헤어짐에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헤어짐이 나을 거라는 기대.
다른 하나는 헤어짐을 감당할 용기.
헤어질 능력
헤어짐이 나을 거라는 기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를 추구하는 것이다.
+를 추구하는 건 더 좋은 직장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와 같다.
지금의 직장이 자신의 능력에 비해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뛰어난 능력으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한다.
직장을 떠나는 것이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므로 헤어지는 마음의 불편함도 적다.
연애를 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더 좋은 상대를 만날 기대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성을 찾을 자신감이 있다.
어쩌면 헤어질 명분을 제공하길 바랄 수도 있다.
이미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이성이 주변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만날 능력은 헤어질 능력이 된다.
헤어질 능력이 큰 사람은 비교적 작은 용기로도 헤어질 수 있다.
헤어질 용기
다른 하나는 -에서 0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에서 0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괴로움보다는 아예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를 추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0은 없어지는 두려움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는 직장을 떠났을 때의 두려움과 같다.
다시 취직할 수 있을까.
더 고립되고 외로운 시간들만 남지 않을까.
결국 더 나쁜 직장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두려움으로 억지로 버티고 있다면 그저 괴로움을 지속할 뿐이다.
이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양면
지금의 일이 만족스러워 계속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나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 견딘다.
떠났을 때의 막막함이 때론 더 두렵기에.
오랜 시간 헤어지지 않는 연인들을 보며 부러워할지 모른다.
'저들은 정말 사랑하는가 보다, 정말 행복한가 보다.'라고.
하지만 정말 그들에게는 행복만 있는 것일까?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불행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두려움은 걱정하고 준비한다.
두려움은 사랑의 시계가 돌아갈 때 멈출 것을 걱정한다.
행복의 이끔과 두려움의 뒷받침 사이에서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다.
사랑을 행복하고 밝은 것으로만 상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사랑을 지속해야 할 삶에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함께 있다.
긍정적 감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부정적 감정을 견디고 감당할 인내심도 필요하다.
두려움과 믿음
무조건 견디라는 말은 아니다.
고통을 견딘다고 사랑이 되지는 않는다.
철학자 강신주는 당당히 자신의 사랑을 찾으라 말했고 그렇게 실천했다.
그것이 상처와 헤어짐으로 끝난다고 해도 말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사랑을 선택할 수 있고, 또 이별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만큼 이별을 두려워했으면 좋겠다.
만나야 할 이유를 찾는 만큼, 헤어지지 못할 이유를 가지면 좋겠다.
사랑의 영역은 0~+ 범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 까지 있다.
-에서도 견딜 사랑이 필요하다.
아마 우리는 -100이 되지 않는 한 헤어지지 못할 것이다.
뭘 더 채우고 싶은 것보다 비어버린 공간이 있는지 보는 우리다.
한 걸음 내딛는 것보다 지나온 길에 놓친 건 없는지 걱정하는 우리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보다 헤어짐의, 혼자됨의 두려움이 더 크다.
그러나 이 나약하고 소심한 감정이 우리가 헤어지지 못하는, 가장 밑바닥에도 존재하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