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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Feb 22. 2024

호구되긴 싫지만 시키면 합니다

올해 아내와 함께 지역을 옮겼다.

남자도 별로 없고, 승진하는 곳도 아니다.

빈자리에, 시키는 일을 하리라 각오는 했었다.



상대적


교감선생님께 "부장 맡아주실 수 있지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민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면 OK사인을 보낸 셈이다.

죽어도 못한다고, 휴직할 거다 나자빠지지는 않았으니.


다행히 교무는 기존에 있던 선생님이 하기로 했다.

작은 학교에서 덩어리 업무를 하다 보니 남은 건 만만해 보였다.

심지어 생활엔 학폭도 따로 떼어 있었으니, 아무 부장이나 괜찮다고 했다.


처음엔 연구에 전담을 받기로 했다.

인사위원회 끝에 3학년에 생활로 결정됐다.

전담이 필요한 선생님이 있어 양보해 드렸지만, 난 이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내는 교무부장이 되었으니.

나는 "아무 업무나 주십시오. 학년도 상관없습니다."

정말 다 내려놓고 가긴 했지만 쿨한 척에 결과도 좋았는데.

아내는 아무런 선택지도 없는 'yes or yes'의 통보를 받았다.


아내가 거절하면 30살까지 내려가야 한단다.

일할 나이대의 사람들은 모두 사정이 있단다.

결국 마음 약한 바보가 모든 짐을 져야 하는가.



호의적


다음 날 아내는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그래..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은 거 같아.

꼭 남자들만 부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빼면 또 누군가 이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이 말이 이 글을 시작한 이유다.

임신 중에도 운동회 준비에 물건을 나르던 사람이다.

남자들만 체육업무 맡고 뛰어다니는 게 안쓰러웠다고.


남녀 성별의 문제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속한 곳보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멋져 보였다.


아들을 군대 보낸 어머니의 마음으로 군정책을 만들길 바란다.

임신한 아내를 곁에 둔 남편이 바라는 휴직, 육아 정책이길.

적대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젊었을 땐 일했다 말하는 경력자는 무책임해 보인다.

돈을 그만큼 받으면 월급값을 하라는 말은 언제고 돌아온다.

어떤 경계로 나뉘어 서로 떠넘겨야 하는 현실은 마음이 아프다.


물론 세상을 이상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모든 어려운 일을 내가 다 맡고 싶진 않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하겠다.



양심적


작년 내 책으로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과정에 '관계와 업무, 이정표'라는 글을 소개했다.

교직에서 내 이정표가 되어줄 누군가가 있나 하는 내용이다.


그 글은 30대 초반의 글이었고, 따라가려고 했다.

한 선생님은 본인이 앞차가 되신다고 했다.

어딜 가든 생활부장, 학폭을 맡아주신다고.


연세가 있어 보이는데도 연수를 찾아들으시는 분이었다.

옆에서 제자이자 동료교사인 분이 증명까지 해주셨다.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셔요. 하지만 저는 힘들 것 같아요."

난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먼저 어려운 일을 맡아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ADHD학생이 있는 반이었고 매일이 전쟁이었다.

그해, 머리가 속도 겉도 하얗게 질렸다.


그 이후로 내가 먼저 나서서 한다고는 잘 안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보다 여리고 약했다.

그나마 살아남고 살아내는 중이다.


어색하고 불편한 교육과정 만들기가 끝났다.

누군가는 원하는 학년, 업무를 받기도 했겠지.

여전히 억울하고 괴롭고 막막한 사람도 있겠다.


우리 학교도 카톡 단체방이 만들어졌다.

너무 밝게 반응하면 친화회장이라도 시킬까 자제 중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젊은 사람을 시킨다면 내가 할까 하는 마음도 있다.

내 양심은 그 어디 중간쯤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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