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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Apr 12. 2024

학교폭력 실태조사 사전교육

매년 4~6학년 대상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한다.

여기에서 뭐라도 나오면 바로 사안처리를 해야 한다.

학폭 업무는 다른 선생님이 하지만, 난 생활부장이라 사전교육을 한다.



힘든 아이들


"점심 먹고 쉬어야 하는 귀한 시간에 이렇게 모이게 해서 미안해요.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건 바로 신고가 되는 거예요.

요즘 생활하면서 여러 문제나 갈등도 있어서 제가 오게 되었어요.


어제만 해도 화장실에 물휴지를 던지고 노는 사건이 있었죠.

쉼터에서, 급식실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거나 거칠게 놀기도 합니다.

교실에서의 문제는 담임선생님이 얘기해도 이런 공용공간은 참 지도하기가 어려워요.


우선 저는 몇몇 말썽꾸러기들에게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 행동은 제발 멈추세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 친구들과 선생님께 문제아로 찍혀버릴 거예요.


어떤 친구는 단순한 장난으로, 또 누군가는 정말 속에 있는 분노로 잘못된 행동을 해요.

'얘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이해할 수 없는 친구도 사실 이유가 있을지 몰라요.

원래 타고난 성격일지, 마음속 상처가 생긴 어릴 적 어떤 사건일지.


여기 모두 모여있지만 가정의 모습은 다들 다를 겁니다.

저도 지금 선생님으로 서있지만, 어린 시절이 썩 좋진 않았어요.

사실 여러분의 선배이고, 아버지가 해군으로 바로 옆 아파트에 살았죠.


요즘은 가정학대 신고를 한다지만 그땐 체벌이 허용되던 때였어요.

아버지께 많이 맞았고, 억울하고 증오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못살겠다고 집을 나가는 엄마를 잡으러 가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렇게 선생님으로 멋지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과도 잘 지내고 오히려 저한테 고마워해요.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제가 부모보다 더 어른스럽게 감싸줄 수 있거든요.


제 말이 여러분께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들을 단순히 나쁜 애로 보지는 말아요.

또, 문제를 만든 친구도 꼭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요.



바른 아이들


반대로 규칙에 따르고 성실한 친구들도 있지요.

이 친구들 덕분에 학교가 잘 돌아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꼭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저도 3학년을 가르치고 있지만, 모두가 말을 잘 듣진 않아요.

다른 학년에서 뛴다고 신고를 해도, 우리 반에도 그런 애가 있거든요.

선생님들도 자기 반을 넘어서 옆반에 무언가를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잘하고 있는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해 주세요.

'지금 내가 규칙에 잘 따르고 좀 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건 부모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받은 행복이다.'

'지금 내 교실보다 다른 교실이 시끄럽게 느껴지는 건 우리 반에 장난꾸러기가 적은 행운이다.'


실제로 선생님들이 어떤 학년을 맡을까 고민할 때도 이런 게 정말 중요해요.

장난꾸러기 한 둘은 잘하는 친구들이 뭐라 하면 힘을 못써요.

그런데 3명 이상이 되면 자기들끼리 뭉쳐서 별짓을 다하죠.


선생님도 여러분도 어떤 인연인지 이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어요.

굳이 이 만남을 악연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어요.

조금은 자제하고, 조금 더 이해하며 지내봐요.

선생님들도 많이 애쓰고 도와줄게요.

제발 신고는 신중히~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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