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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r 23. 2024

07화 넬슨으로 향하는 버스

다섯 명의 다국적 여자들과 방을 공유했던 크라이스트처치에서의 첫날, 밤새도록 잠들 수 없었…


…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역시 잠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곯아떨어진 나는 다음 날 정오가 가까운 시간에 눈을 떴다. 6인용 방이 텅 비어 있었다. 같은 방 룸메이트들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떠났지만 어찌나 깊게 잤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새 기분이 바뀌었다. 공동 샤워실이 생각만큼 껄끄럽지 않았다. 부스스한 머리로 슬리퍼를 끌고 쭉 여기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백패커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낯선 환경이 너무 끔찍해서 동화 속 완두콩 공주가 된 것 같았는데 역시 내게 그런 고귀한 피는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데서나 잘 자고 무엇이든 잘 먹고 심지어 물갈이도 없었던 걸 보면 머슴처럼 튼튼한 몸을 가진 것 같았다.(기쁘진 않다)


대형 배낭을 카운터에 맡기고 크라이스트처치 관광을 나섰다. 대성당 광장이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주말이라 벼룩시장도 들어섰는데 배낭 무게를 늘리고 싶지 않았던 내 눈에 들어오는 물건은 없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대성당만큼이나 유명한 마법사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마술 시범인지 철학 강의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곧잘 박수를 쳤다. 마법보다는 관광객들과 사진 찍기 바쁜 마법사 할아버지는 이날 컨디션이 안 좋으신지 일장연설을 하다 이내 나무그늘에 앉아 일할 생각을 안 하신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도시 전체가 한가해 보였고 러시아워도 없었다. 시내 중앙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가 캔터베리 박물관과 아트센터, 빅토리아 광장을 천천히 순환했다. 다리가 튼튼한 사람이라면 여유롭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시내 곳곳에 모기를 쫓아준다는 보라색 라벤더와 붉은 장미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그 어떤 곳보다 ‘영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도시라고 했다. 돌로 만든 우아한 건물과 굵고 울창한 나무들이 과연 에밀리 브론테와 토머스 하디의 소설이 떠올리게 했다.


크라이스트처치를 가로질러 해글리 공원으로 흘러가는 작은 에이번강 강가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야생 오리들이 돌아다녔다. 에이번강에서는 뱃사공이 노를 젓는 배로 한가롭게 유람하는 펀딩을 이용할 수 있었다. 주로 일본인 할머니들이 전통 유니폼을 입은 뱃사공에게 노를 젓게 하면서 흐뭇해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여기서 노를 젓는 알바를 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에이본 강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추억하는 ‘브릿지 오브 리멤버런스’라는 다리와 앞에 로버트 팔콘 스콧 선장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동상 앞에 누군가 놓아 둔 생화 꽃다발이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리들턴 항구는 스콧 선장이 남극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곳이었다. 실용적이었던 노르웨이인 아문센과 달린 영국 해군 장교였던 스콧 선장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15시간 쉬지 않고 일한 끝에 자수성가했다는 저자들은 실패를 “스스로 불러들인 불운”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성공은 “스스로 불러들인 행운”으로, 노력이나 영리함에 따른 결과라는 의미일 것이다.


스콧 선장의 의지는 아문센만큼 강했고 그의 시련 또한 아문센보다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아문센이 뜨거운 휴양지에서 곧 베스트셀러가 될 남극 정복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을 즈음, 그의 시체는 크라이스트처치와 몹시 닮아 있을 그의 고향 영국과 한참 떨어진 남극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대성당 광장을 가로지르는 콜롬보 스트리트의 시티 익스체인지에서 버스를 타고 크라이스트처치 외곽에 있는 캐시미어 힐로 향했다. 이름에서부터 부유함이 느껴지는 언덕에 사인 오브 타카헤(Takahe 타카헤는 날지 못하는 뉴질랜드 새다)라고 불리는 소박한 성이 있었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는 오래된 석조건물에서 점심을 먹은 후 체스판처럼 반듯하게 가꿔진 정원을 걷다가 크라이스트처치 시내와 리들턴 항구 그리고 멀리 평야 지대를 내려다보았다. 


다음 날 새벽 6시 반, 스타타임스 백패커스를 체크아웃한 후 여전히 한쪽이 기울어진 대형 배낭을 짊어지고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인터시티(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뉴질랜드의 시외버스) 사무실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 얼음장 같은 새벽 공기를 들여 마시면서 넬슨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사무실 유리문 앞에 놓인 잿빛 보따리 짐짝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자세하게 보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던 금발의 십 대 배낭족 소녀가 담배를 피우려고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그녀도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소녀들 못지않게 추웠지만 차마 침낭을 풀어 저런 형상으로 변신할 수 없었던 나는 한참 동안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녀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온갖 종류의 여행자와 보이스카우트와 비슷한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로 좌석의 절반 정도가 채워졌다. 그 카키 유니폼 단체 이름이 뭔지 그리고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카키 유니폼들과 되도록 멀리 떨어져 앞쪽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팔다리가 쑥쑥 자라고, 웃을 때 치아교정기가 보이는 뉴질랜드 청춘들의 왁자지껄한 혈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친 기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덩치 하시는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차내에서는 오직 물 외에는 그 어떤 먹는 행위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카키 유니폼들을 한참 노려보는 바람에 이 불쌍한 청춘들은 곧 하나둘 퍼져 잠들기 시작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출발해 카이코우라와 픽턴을 거쳐 넬슨으로 향하는 버스는 좁은 국도를 따라 8시간을 달렸다. 뉴질랜드에는 고속도로가 없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버스 안에는 중년의 한국인 부부와 나를 포함해 네 명의 동양인이 있었는데 또 한 명의 청년은 일본인 같았다. 내리는 순간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두 시간 반이 지나 버스가 카이코우라 해변에 멈춰 섰다. 관광지 답지 않게 후미지고 볼품없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운이 좋으면 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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