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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r 16. 2024

06화 백패커스 403호의 한국여자

북섬 오클랜드에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비행기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두 개의 섬은 기후와 풍광이 전혀 달랐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웅장한 자연 환경은 남섬의 풍경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인간의 흔적이 적어지면서 경탄을 자아내는 고고한 경치가 펼쳐진다.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한 나는 뚝 떨어진 기온에 깜짝 놀랐다. 오클랜드에서 느꼈던 서늘함과는 또 다른, 정말 12월 겨울 같은 추위가 나를 맞았다. 우박이 쏟아질 듯 우중충한 날씨였다.


남반구에 있는 뉴질랜드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남극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점점 더 추워진다. 북섬의 최북단 해변에서는 해수욕이 가능하지만 남섬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해변마다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으니 바닷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배낭을 뒤져 두꺼운 겉옷을 꺼내 입었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기모 플리츠 집업이었다.  


“고구마 장사가 잘 안돼요. 100원만 주세요.” 이 옷을 입고 이렇게 말하면 정말 백원을 받을 수 있었다. 웬만하면 입지 않으려고 했지만 스타일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이 고구마 판매업계의 유니폼 같은 집업 점퍼는 일단 뒤집어쓰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체가 모호해졌다. 


그런 복장으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수도 오클랜드에 비해 훨씬 작고 한적한 소도시였다. 숙소가 크라이스트처치 중앙에 위치한 대성당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해도 됐지만, 굳이 비싼 택시를 탔던 이유는 짐 부칠 때 딱 10킬로그램이 나왔던 배낭 때문이었다. 


아벨 타즈먼에서 오클랜드로 돌아올 때까지 여행을 고생으로 바꿔 놓은 그 배낭은 뉴질랜드의 대형마트 구석진 세일코너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때 나는 아웃도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똑같이 생긴 배낭인데 왜 가격이 두세 배 차이가 날까? 거기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대신 “어머! 이게 더 예쁘잖아! 게다가 가격도 훨씬 싸네!”라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덜컥 아무 배낭이나 골라잡았다. 그 배낭에 물건이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출발 전날 배낭을 꾸릴 때까지 며느리도 몰랐다.

처음 둘러맨 배낭은 무지막지하게 등을 밟아 댔다. 납득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곧 익숙해지겠지, 애써 정신승리를 해봤지만, 인체공학적으로 무언가 상당히 잘못된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무거울 리 없었다. 


게다가 대형 배낭을 꾸릴 때 꼭 알아야 할 패킹 요령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똑같은 물건을 똑같은 배낭에 넣는 일이었다. 질량은 불변이다. 그런데 넣는 요령에 따라 가벼울 수도, 무거울 수도 있다니,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대체 뭘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바리바리 쑤셔 넣은 배낭은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기우뚱했고 이후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한쪽이 기울어진 배낭을 짊어지고 중력이 이끄는 대로 비틀비틀 걸어가야 했다.


택시 안에서 어마무시한 무게의 배낭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돌렸다. 택시기사님이 한국인 교포였는데 한국말을 잘 못한다면서 계속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는 대성당 광장에 나를 내려주면서 두 가지 충고를 했다. 하나는 “나쁜 한국인도 있으니까 반드시 짐 조심하라”였고, 다른 하나는 “백패커스? 왜 그런 곳에서 묵는 거야? 엄청 더러우니까 단단히 각오해라.”였다.


어느 여행자 커뮤니티에서 여행할 때 가장 유용한 쿠폰이 무엇인지 재미로 묻는 설문이 올라왔다. 


1.전 세계 어떤 호텔이든지, 공짜로, 우선적으로 묵을 수 있는 쿠폰

2.전 세계 어떤 교통수단이든 공짜로,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

3.전 세계 어떤 식당이든 공짜로,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

4.전 세계 어떤 언어이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쿠폰

5.전 세계 어떤 곳이든 짐을 날라주는 짐꾼을 제공해주는 쿠폰

6.전 세계 어떤 박물관, 연주회장 등의 유료 입장시설을 공짜로,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


과연 여행 중에는 무엇이 최우선으로 해결되면 좋을까? 


사람들은 주로 선택했던 건 4번과 5번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다른 문항은 여행경비가 충분하다면 문제되지 않지만 외국어 능력과 짐꾼만큼은 왠만한 돈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1번이다. 


 “뭐야, 호텔 따위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골라잡을 수 있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 돈 따위가 잔뜩 있다면 저 다섯 가지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여행지에서 언어가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짐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여행 중에는 여행용 키트를 권하는 바다. 또 아주 값싼 음식만 먹어도 우리 여행자들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나이에 노숙하면 죽는다.


나에겐 물과 샌드위치로 한 끼를 때우고 몇 정거장 정도 걸어갈 용기가 있었지만, 길바닥에 침낭을 깔고 잘 수 있는 용기는 전쟁 상황이라면 모를까, 절대 생기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숙소로 인해 참을 수 없을 만큼 불편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바로 이 뉴질랜드 트램핑 여행을 제외하면. 


백패커스(Backpackers)는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였다. 유스호스텔 정도일까? 유스호스텔에서도 묵어본 적도 없으니 유스호스텔이든 백패커스든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어떤 것의 우수함을 알고 싶을 때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뉴질랜드의 백패커스는 하루에 약 18~25 뉴질랜드 달러였다.(15,000원~20,000원)


만 오천 원. 어딘가 불길함이 감지되는 금액이었다. 크라이스트처지 공항에서 시내까지 데려다 준 택시기사님의 충고가 다시 떠올랐다. 


잔뜩 겁을 먹어서 그랬는지 처음 발을 들인 백패커스는 그렇게까지 지독해 보이지 않았다. 조금 낡긴 해도 거실에 투숙객이 쉴 수 있는 소파가 있었고 비디오도 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 중에 경험했던 백패커스는 시설이 천차만별이었다. 야외풀장과 썬베드, 발리볼 모래코드까지 갖춘 백패커스가 있는가 하면 낡아빠져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백패커스도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백패커스에는 공통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불편함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난생 처음 본 사람들과 같이 방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백패커스는 기숙사와 비슷했다. 4명에서 8명의 여행자가 같은 방을 사용해야 하고(싱글룸은 없다) 공동 샤워실과 공동 화장실을 이용한다. 몇몇 백패커스를 제외하고 특별히 남녀 구분해서 방을 주지 않는다. 성별을 구분해 방을 배정하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체크인하는 순서대로 빈 침대를 주기 때문에 결국 마찬가지였다. 


직원이 건네준 열쇠를 받아들고 6인용 방에 들어선 나는 빈 침대 하나를 골라잡아 주섬주섬 짐을 풀었다. 한낮이라 다들 관광을 나갔는지 3개의 2층 침대가 놓인 좁은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낯선 이들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스트레스가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날 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여행자들에게 눈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하지 않았다. 해가 진 첫 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피곤한 몸을 푹 쉬게 하고 싶은데 방을 같이 사용하는 이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인기척이 거슬려 마음 편하게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엎드려 수첩에 무언가 메모하던 옆 침대의 서양 여자가 내 쪽을 향해 싱긋 웃었다. 나는 그녀가 행여 말을 붙일까 무뚝뚝하게 외면하곤 침대 매트리스와 시트커버가 오염된 건 아닌지 살펴보았다. 


트램핑을 하겠다고 설레발치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럴 바엔 가족들의 충고대로 로토루와 온천 관광이나 갈 것이지 왜 기어코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활짝 열어놓은 창밖에서 젊은 여행자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노천카페에 모여 늦도록 맥주를 마셨다. 한껏 흥이 오른 유쾌한 소음과 정반대로 내 기분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낯선 장소라는 것, 낯선 사람들과 낯선 방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혼자 방치된 것 같은 기분. 모든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살벌하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뉴질랜드 남쪽으로 내려온 첫날 밤, 인도여자, 미국여자, 일본 여자, 그리고 두 명의 독일여자가 잠든 크라이스트처치 스타타임즈 백패커스 403호의 한국여자는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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