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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Jan 25. 2023

<운동하는 여자들> (2) 수영하는 임수영

지느러미를 가진 임수영

  수영이란 어떤 운동일까? 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지상에서 하는 운동은 엄두라도 낼 수 있지만, 물이란 새로운 공간에서의 운동은 두려움부터 든다. 그래서 주변에 수영을 취미로, 운동으로 꾸준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달리기를 하며 수영을 같이 하는 친구들을 꽤 만났는데, 그들은 수영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수영을 끝내고 나오는 소회가 물속만큼 잔잔하기 때문일까? 그럼 물에서의 운동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느낌이 보편적일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던 중 수영이를 알게 되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회사에서 수영이는 입사 1년을 갓 넘긴 신입사원이었고, 직급상 내 밑에는 수영이의 선배가 4명은 더 있었기에 나는 수영이와와 좀처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선임님, 수영씨는 철인3종을 하고 싶어해요.”
“네? 철인3종?”
내 시선이 수영이를 향하자 수영이는 머뭇거리지만 밝아지는 미소로 내게 말했다.
“아니 그건 해보고 싶다는거구요. 저는 수영을 좋아해요. 수영.”
“수영?”


  나는 이제 만난 수영이 마음의 문을 열 무기로 수영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글을 열 무기로 수영이가 수영을 하는 이유를 택하고자 한다. 


  수영이는 어렸을 적 맞으며 운동을 했다. 동네 근처 G수영장의 선수반 선생님은 일곱 살에서 열 살 되는 아이들을 때리며 가르쳤고, 가르치면서 때렸다. 어느 날은 100초 안에 왕복달리기에 실패해서 맞고, 어느 날은 줄넘기에 줄이 걸렸다고 맞았다. 계단 오르내리기 훈련을 소화 못했다고 죽도로 손바닥을 여러 번 맞은 날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엄마가 밥을 먹여주셨다. 그날의 죽도도, 줄넘기도, 계단도 어렴풋한데, 엄마가 먹여준 밥과 맞은 손을 감싸주었던 또 다른 선생님의 손은 선명한 것을 보면 맞은 것보다 수영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G수영장 선수반에 등록한 건 엄마의 의지였으나 그 선수반을 계속 다닌 건 수영이의 의지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수영이는 실내 수영장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 구령대에 올라 “이름 임 수 영 상장 초등학교 마스터즈 수영대회 O등”하며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전교생 앞에서 상장을 받을 때면 그간 맞은 손이 따끔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G수영장의 라이벌 S수영장 선수반에서는 배영을 가르칠 때 얼굴에 물컵을 올려놓고 물이 쏟아지면 때렸다. 누구나 다 이렇게 맞으며 운동하는 것인 줄 알았을 때, 수영이는 10살이었다. 결국 수영이의 선수반은 “내일부터 안가도 돼”하는 엄마의 한 마디에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그 때부터 수영이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수영장이 생겨났다. 자신만의 수영장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접영을 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자유영을 했다. 수영이에게 삶을 산다는 건 곧 유영이었다.


  수영이는 성인이 되는 첫 달에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땄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수영장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경력이 전혀 없던 수영이를 써주는 동네 근처 수영장이 없어 집에서 1시간 반이나 떨어진 B 수영장을 주말마다 오가며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2시간씩 3번, 총 6시간동안 수영을 가르치던 수영이의 머릿속은 창작의 고통으로 수영장과 달리 메말라갔지만, 그래도 수영이 늘 곁에 있어 좋았다. 

  경력이 쌓이자 동네 근처 수영장으로부터 드디어 요청을 받았다. 새벽반 강사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새벽반은 어르신들의 주 무대였다. 어르신들은 갓 스무해를 산 선생님을 못미더워했지만, 물속에서 동작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어린 선생님의 열정에 감복하여 “임 선생님, 임 선생님”하며 수영이를 찾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새벽에는 수영강사를, 아침 9시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선임님, 저는 지금도 딘의 half moon 노래를 싫어해요”
“왜요?”
“그 때 제 모닝콜이었거든요. 노래만 들으면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싫어요.”
“그런데 그 때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수영신의 부름을 받았거든요”


  수영신은 수영이를 꾸준히 찾았고, 수영이도 그런 신내림이 좋았다. 작두 타듯 수영장 속을 누비며 수영이는 자신에게 지느러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팔과 다리가 한 쌍의 지느러미가 아니라면 지금 내가 가르는 물은 무엇인가. 때로는 생각하는 물고기가 되어 잡념이라는 물결 속에 몸을 뉘였다. 25m 레일 끝까지 하는 잠영은 수영이의 특기였고 그랬기에 어떤 날은 물이 땅보다 더 쉬웠다. 수영을 마치면 몸엔 땀이 송글했다. 수영장물과 뒤섞인, 타인이 보면 그저 그런 물기였겠지만 수영이는 알았다. 아니, 수영이만 알 수 있는 땀이었다. 그 땀을 다시 물에 흘려보내고 약간 배고픈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길을 수영이는 사랑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2월, 2년만에 수영이는 드디어 수영장으로 돌아간다. 코로나19로 닫힌 수영장문이 열리는데 2년이 걸린 것이다. 


“수영씨, 수영장에 가서 뭐할 거예요?”
“수영 할 거예요,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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