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역량을 모두 보여주는 친절하고 신뢰도 높은 성적증명서 만들기
과거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대학 성적은 중요한 평가 척도였으나, 최근에는 지원자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어졌다. 많은 기업이 대학 성적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를 절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있다.
채용 시장에서 대학 성적은 지원자의 불성실함을 걸러내는 '최소한의 필터' 역할을 할 뿐,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아니다. 기업은 학점보다 자기소개서, 면접, 관련 자격증, 인턴 경험 등을 통해 지원자의 실제 문제 해결 능력과 직무 적합성을 파악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결국 성적증명서에 기재된 수강 교과목의 점수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너그러운 채점과 형식적인 상대평가 운용으로 학점의 변별력이 약화하였다. 이로 인해 기업과 사회는 더 이상 학점을 학생의 실력을 보증하는 절대적인 지표로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대학 교육 전체의 사회적 공신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른바 '학점 인플레이션'은 대학이 학생의 취업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성적을 후하게 부여하는 현상이다. 심지어 절반 이상의 학생이 A학점을 받는 경우도 있어, 중간 수준의 학생마저 A학점을 받는 셈이다. A학점에 상응하는 역량을 기대하고 학생을 채용한 기업 입장에서는 학점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입사에 영향을 미친 학벌이나 학점이 실제 업무 성과와는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많은 대학이 상대평가 제도를 운용한다. 상대평가로 받은 학점은 학생의 실제 실력과 다를 수 있다. 동료와의 비교 순위에 따라 학점이 결정되어 운이 작용하기도 하므로 합리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역량이 뛰어난 학생이 D학점을 받거나, 반대로 역량이 부족한 학생이 A학점을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채용 평가는 학점 중심에서 실질적인 직무 역량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지만, 이러한 역량은 기존 성적증명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대학 교육과정도 교과 위주에서 비교과 활동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와 달리, 학생의 활동 실적과 성취 역량은 성적증명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문서는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전환된 지 오래이며,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면 정보 전달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하지만 성적증명서는 여전히 텍스트로만 구성되어 있다. 공문서의 특성상 불가피하다면 성적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별도로 제공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쉽게 말해 학생을 취업시켜야 하는 대학은 기업체와의 관계에서는 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학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굽기 정도를 '레어', '미디엄', '웰던' 등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역량 평가에도 사회적 약속이 있다면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약속 덕분에 어느 식당에 가도 내가 기대했던 정도로 구워진 요리를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루브릭(Rubric)은 바로 그 약속의 역할을 하는 채점 기준표이다. 루브릭은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 개입 여지를 최소화한다. 2015년 교육부가 전국 전문대학에 NCS기반 교육과정을 요구하면서 발간했던 'NCS 기반 교육과정 운영 가이드라인'에는 수행 정도에 따른 성취 수준 및 평가 점수 예시가 제시되어 있다. 이는 전체 분야에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범용 루브릭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단순히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융합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 등 다면적 역량을 갖춘 인재이다. 하지만 기존 성적증명서는 수강 교과목의 학점, 평점, 백분율 같은 정량적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다.
학생의 역량은 정규 수업 외에 대학 내외의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길러진다. 비교과 프로그램의 비중은 졸업 이수 학점 축소 경향과 맞물려 확대되는 추세이다. 실제로 상당수 대학은 '비교과 마일리지', '역량 포인트' 같은 제도를 통해 학생의 교과 외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 실적을 성적증명서에 부가 정보로 제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제는 정보를 보는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시대이다. 성적 데이터를 차트 같은 인포그래픽으로 시각화하면, 학기별 성적 변화 추이나 특정 과목의 강점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정보 전달력이 높아진다. 물론 성적 자체의 신뢰도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증명서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학생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로서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정보의 시각화는 필수적이다.
성적증명서는 학생의 역량을 증명하는 핵심 문서이지만, 현재는 그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학점 인플레와 형식적 평가로 신뢰를 잃었고, 기업이 원하는 실질적 역량 정보는 담지 못한 채 권위적 형식만 유지하고 있다. 이제 전문대학은 객관적 평가 기준 마련, 비교과 활동을 포함한 종합적 역량 표현, 인포그래픽을 활용한 정보 시각화 등을 통해 성적증명서를 혁신해야 한다. 학생의 진짜 실력이 보이는 성적증명서로의 전환은 대학 교육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고 학생의 취업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