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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지앵 Feb 13. 2024

논어를 읽다 2 學而

논어 첫 장과 편명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논어 전체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문장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거나 들어는 보신 문장일 겁니다.


우선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책을 보더라도 목차를 보게 되면 각 章(장, chapter)의 제목이 있지요? 논어나 맹자도 마찬가지로 장과 그 장의 제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논어나 맹자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을 篇(편)이라고 하고, 완결된 이야기나 문장을 章(장)이라고 합니다. 즉, 논어 한 冊(책)은 20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첫 편은 學而(학이) 편이며, 학이 편은 16개의 章(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편이 시작할 때 가장 앞에 이 편은 어떤 내용이고 몇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朱子(주자)가 註釋(주석)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럼 20개 편의 제목을 알아보죠.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學而第一학이제일>

<爲政第二위정제이>

<八佾第三팔일제삼>

<里仁第四리인제사>

<公冶長第五공야장제오>

<雍也第六옹야제육>

<述而第七술이제칠>

<泰伯第八태백제팔>

<子罕第九자한제구>

<鄕黨第十향당제십>

<先進第十一선진제십일>

<顔淵第十二안연제십이>

<子路第十三자로제십삼>

<憲問第十四헌문제십사>

<衛靈公第十五위령공제십오>

<季氏第十六계씨제십육>

<陽貨第十七양화제십칠>

<微子第十八미자제십팔>

<子張第十九자장제십구>

<堯曰第二十요왈제이십>


특징을 한 번 찾아보세요. 간단한 법칙이 보일 겁니다. 첫째, 앞에 두 글자는 제목일 거 같고, 둘째, 뒤의 제일, 제이 이런 건 아마도 우리가 아는 1장 2장 이런 거 같습니다. 맞아요. 그렇습니다. 앞 두 개 또는 세 개 한자는 제목입니다. 뒤의 제~는 장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법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목은 그냥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각 편의 가장 첫 문장의 첫 두 글자나 세 글자를 제목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學而第一학이제일>은 첫 장이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에서 學而(학이)가 <爲政第二위정제이>는 첫 장이 子曰: 爲政以德이 譬如北辰이 居其所이어든 而衆星이 共之니라. 에서 爲政(위정)이 각 편의 제목이 됩니다. 앞에 子曰은 거의 모든 문장에 나오는 말이라서 제목으로 기능할 수 없으므로 바로 뒤 두 글자를 사용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논어의 첫 장을 읽어보겠습니다. 첫 장은 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수학의 정석(요즘은 뭘 보나요?)의 맨 앞, 집합만 새까맣게 손때가 가득하고, 그 부분은 그래도 지금도 기억에 있는 것처럼 논어의 첫 문장은 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이게 논어와 유교의 精髓(정수)라고들 합니다. 그만큼 아주 간단한 문장인 거 같지만 속에 담겨있는 뜻이 깊고 깊다고 하죠. 주자는 주석에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도 함께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공자의 말이 끝나고, 그 밑에 주자의 주석을 중심으로 여러 학자들의 주석이 달려있습니다. 여기서는 <주석>이라고 표시하겠습니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공자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주석> 배운다는 것은 본받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모두 선하지만 깨달음에 선후가 있다. 늦게 깨달은 자는 반드시 먼저 깨달은 자가 행하는 것을 본받아야(배워야) 선함이 분명해지고 처음의 선함을 회복할 수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새가 자주 날갯짓하는 것이다. 배움은 그침이 없어서 새가 날기 위해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 배우고서 또 때때마다 배운 것을 익히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마음속에 기쁘니 그 (배움에) 나아감을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다. 程子가 말하기를 익힌다는 것은 자주 익히는 것이다. 때마다 반복해 생각하여 (배우고 익힌 것이) 마음속에 젖어들면 기쁜 것이다. (후략)


배우고 배우고 깨닫고 익히고 막 그러라는 말입니다. 참 좋은 말인데 행동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죠. 공자가 이야기 안 해도 좋은 이야기인 줄 알고 너무나 쉬운 이야기인데, 나는 실제로 안 합니다. 그저 아이들한테만 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원래 진리는 가장 가깝고 쉬운 이야기이나 행동하기 어려운 거 같습니다. 여기서도 한껏 느낍니다.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

친구가 멀리서부터 (나를 만나러)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주석> 멀리서 친구가 온다면 가까이 있는 친구는 (얼마나 많이 찾아왔는지) 알 만하다. 정자 말하기를 선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니 진실로 (자기를) 따르는 자가 많아진다. 그러므로 즐거울 만하다. (후략)


인간관계, 정말 중요하다는 걸 나이 먹을수록, 일을 하면 할수록 알게 됩니다. 人福(인복) 많은 사람들 부럽죠. 친구들 많이 있으신가요? 저는 육지에서 멀리 제주도까지, 제주시도 아니고 서귀포 구석에까지 때맞춰 찾아와 주는 친구가 많긴 한데 즐거울 만한지는 모르겠네요. 꼭 무슨 방어 철, 갈치 낚시 철, 한치 철 뭐 이런 때 맞춰서 오는 걸 보니 공자님 말씀하신 그런 친구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오면 술 한 잔 할 수 있어서 좋긴 좋습니다.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군자 아니겠는가)?”


<주석> 윤 씨가 말하기를, 배우고 배우지 않는 건 자기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자기를)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니 어찌 성낼 것이 있겠는가? (중략) 나를 남이 알아주어서 즐거운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라서 쉽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덕을 이룬 자(군자) 라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후략)


저는 사실 위에 두 문장보다도 이 마지막 문장이 뼈를 때립니다. 안 그렇습니까? 요즘 특히나 저 말고도 다들 그러실 거 같아요. 배운 나의 지식을 알아주는 것 아니더라도, 인스타에서 내가 뭐 먹은 거 좋아요 눌러서 알아주면 좋겠고, 내가 유튜브 영상 찍어 올린 거 좋아요, 구독 눌러서 알아주면 좋겠고, 그렇지 않나요? 온전히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만족하고 그런 것이 많이 줄어든 거 같습니다. 남들 시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런 것에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니죠. 공자가 배운 것에 한정해서 이야기했지만, 요즘 시대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문장인 거 같습니다. 한 번 곱씹어 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오래전 이야기 한 문장들이 지금 우리 상황에 와서 꽂힙니다. 이런 고금을 넘어서는 문장들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껏 성경이든, 불경이든, 논어든 맹자든 살아남아 계속 읽히나 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안녕.


충격적인 어플입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좀 세련되게 만들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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