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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Apr 01. 2024

북유럽의 스산함에 대하여.

여행하며 알게된 '받아들이는 법'

아침 7시 반, 알람도 없이 눈을 떴다.

이제 코펜하겐 시차에도 꽤 적응했고, 어제보다 더 할 일이 많은 날이라 그런지 설레는 마음에 눈이 번쩍 뜨인 것. 그리고 아침 8시에 수영장&사우나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나름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오전 계획은 아침 수영과 사우나를 개운하게 마치고 돌아와서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 뚝딱, 빠르게 짐을 싸서 다음 호텔로 이동하는 것. 그리고 짐을 맡기고, 바로 기차역으로 가야 한다.  

글로 쓰기에도 적지 않은 리스트에 심장 간질간질한 긴장감이 돈다.


자, 기다리던 빌라 코펜하겐의 수영장과 사우나 체험을 하러 가볼까? 하며 우선 커튼을 걷는데 아차... 여기 북유럽이지? 확인시켜 주듯 회색 구름이 하늘에 꽉 찼다. 분명 그 작은 틈으로 맑은 하늘이 드문 드문 보이지만 과연 그 위를 덮은 회색구름이 아주 두툼하다. 빗방울이 아주 조금 떨어지는 듯했지만 일단 나가기로 하고, 가운과 간단한 짐을 챙겼다.

(왼)나름 tpo를 맞춤. 에디션'덴마크' 에코백, 파란 수영복 / (오)수영장으로 가는 입구
너무 한산한 수영장,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회색하늘

수영장에 도착하니 프런트 직원도 출근하지 않았다.

잔잔한 물소리와 가끔 들리는 루프탑 너머의 자동차 소리, 그리고 달달 떠는 내 이빨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마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이용객은 나 혼자였다.

썬베드에 짐을 두고 차마 가운은 벗지 못한 채로 우선 발만 담가본 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북유럽 사람들은 사우나 후에 수영을 하는데 나는 그저 물부터 들어가려고 했으니.. 그래서 나는 노선을 바꿔 사우나로 향했다. 작지만 깔끔하고 따뜻한 사우나에서 땀을 쫙 빼고 나는 다시 객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북유럽식 사우나와 수영 즐기기는 반토막만 성공이다.


여기서 수영장과 사우나 공간의 포인트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사소할 수 있지만 나에겐 사소하지 않았던 것들.

1. 인퓨징 워터가 많다.

> 입구와 출구, 중간중간에도 물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냥 물은 없고, 모두 인퓨징 워터였다. 그것도 레몬, 라임, 자몽 종류별로.

2. 사과가 여기저기에 있다.

> 수영장 입구와 출구뿐 아니라 호텔 로비와 복도 중간중간에도 사과 바구니가 있었다. 한국 사과보다 더 작고 윤기 나면서 색이 선명한 빨강, 초록 두 가지. 너무 맛있어서 보일 때마다 집어먹으니 식사 대용이 되기도 했다. 후에 거리를 걷다 보니 유독 사과나무가 많기도 했다.

3. 수영장과 사우나 내부 곳곳에는 플라스틱 조각으로 만든 것 같은 가구가 있었다. 이 또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호텔의 의도인 것 같았다.

4. 이들의 사우나와 수영은 편안함, 일상 그 자체. 인종과 성별에 대한 불편한 눈길 일절 없이 그저 '그렇구나' 하는 듯 한 분위기.

5. 헬스장은 정말 작다.

(왼)예쁘고 맛있고, 요긴하게 잘 먹었던 사과 / (오) 플라스틱 조각을 압축해서 만든것 같은 가구


어쩌다 보니 모험심 가득했던, 하지만 끝은 개운했던 아침 첫 번째 활동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객실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2% 부족한 것. 따끈한 국물이 필요했다. 마침 남편이 챙겨준 무인양품의 '우거지 해장국' 블록이 있어 데워먹으면 딱이겠다 싶었던 것. 하지만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갈 것이라 생각하고 전자레인지가 필수인 간편식들을 챙겼던 것이다. 당연히 호텔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전기포트도 찾지 못해서 커피머신으로 '캡슐 없이 따뜻한 물 내리기'에 도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 여기는 전기포트처럼 순간 전력 많이 쓰는 제품은 안 들여놓는구나.. 하며 이곳의 '브랜딩'을 투머치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사실은 서랍 속에 있었던 것...

그렇게 어정쩡하게 뜨뜻 미지근한 해장국과 밥알을 다 셀 수 있을 것 같은 설익은 햇반을 아침으로 먹었다. 물론 사과도 함께!

눈물겹던 그 날의 아침.

다시 빌라코펜하겐으로 돌아왔을 때 전기포트를 발견한 나의 허탈함이란.. 사실 반가움이 더 커서 혼자만의 웃긴 해프닝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생존'의 시간이었지만.

빠르게 짐을 싸고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호텔로 나섰다. 아침의 공기는 언제나 상쾌한 것! 이것만은 회색 구름도 막지 못했다.


다음 호텔 'COCO HOTEL'로 가는 길.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라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한적했고, 골목을 걸으며 내가 찜해두었던 와인바, 식당들을 지나갔다. 북적북적한 사진으로만 보던 곳들의 문 닫은 고요한 모습을 보니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엿보는 것처럼 묘한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 호텔인 이곳은 리서치할 때 '1층의 카페&바 가 일하기에도, 친구를 만나기에도, 혼자 있기에도 좋은 곳입니다'라는 후기를 보고 저장해 두었던 곳이다. 홀로 여행객인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 이런 공간이 숙소 근처에 있어도 좋지만, 내가 묵고 있는 호텔 1층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4일을 보내게 되었고, 편하게 마음껏 누려보자! 하며 문을 열었다. 캐주얼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곳. 어딘가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으면서도  북유럽의 미니멀한 느낌이 강했다.

호텔 중심 코트야드, 그리고 로비에서 객실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카페겸 바. 코트야드와 이어진다.

민트컬러가 포인트로 디자인된 공간은 처음 가는 곳인데도 묘하게 안정감이 들었다. 친절한 프런트 데스크의 안내를 받고, QR코드로 빠르게 체크인을 했다. 이쯤 되니 정말 현금, 종이에 쓸 일 별로 없는 이들의 디지털의 일상화.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은 바로 못하고 짐을 맡겨두기로 했다.

호텔은 꽤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호텔과 와인바, 레스토랑, 편의점, 마트 등 저녁까지 거리를 밝혀줄 곳들이 주변에 많았고,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파리에서의 시끄러웠던 호텔 경험을 떠올려보면 정말 한적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호텔에서 다시 중앙역 쪽으로 갔다. 이제는 얼추 길도 외웠고, 사실 타지 3일 차 만에 기차를 타고 외곽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라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든 기차역이란 복잡하고 사건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중앙역은 밖에서 보던 큰 규모대로 내부도 웅장했다. 그리고 사람이 응대하는 창구보다 자동발급기가 많았던 곳. 대중교통 티켓 구매와 정거장도 함께 있는 곳이라 사람이 엄청 많았다. 나의 유럽 최애 간식 코코넛 초코바와 물 하나를 사서 티켓 발매를 하러 갔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으로 가는 기차 티켓 편도 1장.

돌아오는 길에는 주변 부촌과 해안가를 버스를 타고 둘러보고, 핀율하우스도 들릴 예정이라 편도 티켓을 샀다. 루이지애나만 다녀온다면 왕복티켓에 뮤지엄 입장 티켓이 포함된 세트를 구매해도 좋은 것 같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기차를 타고 간다면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서 내리면 된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그리고 지도를 보지 않아도, 사람들을 따라가면 그곳에 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나는 파워 열정으로 오픈런을 도전하는 한국인.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앞장서서 당차게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절반도 못 가서 선두를 빼앗기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놓칠 수 없는 사진으로 찍어야 할 아름다운 풍경에 도저히 앞만 보고 갈 수는 없었던 것.

가는 길에 동화 속에서 본 듯한 집들, 그리고 각 집마다 내놓은 아주 작은 빈티지 마켓들. 찬찬히 볼걸.. 후회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결제는 틴케이스에 현금을 넣어두고 가거나 계좌이체로 할 수 있었다. 양심 구매 같은 시스템. 또 집집마다 사과나무가 거의 한 그루씩은 꼭 있었는데, 이때부터 호텔에 사과가 많이 있었던 게 우연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Gl Strandvej 13, 3050 Humlebæk, Denmark


오픈런에도 이미 먼저 온 사람들로 줄이 꽤 긴 상태. 그래도 입장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내부로 들어가면서 정면에 보이는 루이스폴센 조명. 솔방울을 닮은 조명이 숲에 둘러싸인 미술관과 아주 잘 어울렸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가면 바로 정면에 뮤지엄샵이 보이고 양쪽으로 미술관 내부로 이어지는 복도가 시작된다.

나는 작품보다는 건물과 경관에 더 관심이 있어서 우선 한 바퀴 다 돌아본 후에 더 찬찬히 보기로 했다.

자코메티 조각상이 복도 맨 끝에 있는 복도를 지나기 전 야외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혼자 나가보았다. 여행 와서 가장 조용했던 공간. 물소리, 새소리, 잔잔한 바람소리만 들렸다. 산책로로 내려가니 작은 연못이 있고, 둘레를 따라가면 미술관 내부로 이어지는 곳, 내부에서 산책로를 조망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보였다.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날씨에 왔다면 다음을 기약할 아쉬움 없이 좋은 기억만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흐린 날씨에 약간은 으스스한 정원, 어느 정도의 모험심이 필요한 산책이 인상적이었고, 이곳의 다른 모습도 보고 싶었다. 아쉬움과 미련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루이지애나의 대표적인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 구경하기.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점점 구름 없이 맑아지고 있었다.

해가 뜨고 있는 하늘에 사람들은 점점 더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낚시와 물멍, 잔디에서 구르기 등 자연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했다. 그리고 나도 또 다른 풍경에 사진 찍기 바빠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신나서 막 누른 카메라의 설정이 잘못되어 있어서 건질 사진이 몇 장 없었다. 하지만 그때 기분 좋게 셔터를 눌렀으니 우선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제 여행에 정말 적응했는지 혼자 타이머로 사진도 찍기 시작했다. 내 사진을 찍을 때 특히나 생각나는 남편.

내부에 멋진 전시들을 둘러보고, 남편도 일어났을 즈음이라 그의 장소 불문 최애장소 굿즈샵으로 갔다. 에코백과 포스터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쇼핑열정을 불태우기로. 포스터는 포스터샵에서 본 것보다 더 많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슬라이드 넘기며 포스터를 고르고, 선택한 번호를 찾아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할인 1%도 없는 저렴하지만은 않은 가격. 하지만 사이즈와 내용에 따라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우리 집과 잘 어울리는 포스터와 에코백 두 개를 구매해서 서둘로 다음 장소로 이동할 버스를 타러 나왔다. 그리고 가는 길에 본 북유럽 스러운 정원. 나무들이 어쩜 그렇게 짙은 초록에 길쭉길쭉한지. 괜히 속이 다 시원했다. 교통카드는 어플을 다운로드하여서 충전하고, 타면서 태깅하는 방식. 한국에서는 갤럭시만 가능한 방식이었지만 이곳에서 아이폰으로도 가능하다니 짜릿했다.

버스를 탄 이유는 단순히 거리 구경을 하고 싶어서. 이곳을 꽤 외곽이라 트래킹을 준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걷기에는 너무 길고, 숲이 우거진 길을 지나야 만 했다. 그리고 해안가를 따라 40분 정도 달리는 버스가 있어 지나가면서 바다와 그 주변 멋진 저택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다음에 남편이랑 온다면 차 렌트를 해서 구석구석 구경해보고 싶은 동네였다. 어딜 가든 부촌 구경은 재미있는 것. 근처에 '화이트 시티'라는 아르네야콥센의 건축물이 남아있는 동네가 있어 구경할까 했지만 갑자기 태풍급으로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그 길목에 아르네야콥센이 지었을 것 같은 스타일의 집, 성 같은 집,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듯한 집 등 멋집 집 구경에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버스 여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버스가 엄청 자주 선다는 것. 정류장마다 간격이 그리 넓지 않아서 차 없이도 외곽에서 코펜하겐 도심으로 가기에 어렵지 않아 보였다.


Finn Juhl House 

Vilvordevej 110, 2920 Charlottenlund, Denmark

*토, 일, 월만 오픈


40분쯤 달려 핀율하우스에 도착하기 직전, 나는 긴장한 탓에 한 정거장 미리 내려버렸고, 의도치 않게 홀로 도로를 걷게 되었다. 작은 마을을 지나 지도를 따라가는 게 갑자기 나타난 울창한 숲.

이거 맞나..? 하며 입구에서 서성이며 지도를 다시 보는데 아무리 봐도 길은 하나였다. 미리 보고 온 블로그 후기에도 없던 숲길이라 당황한 나.

사실 그때 피곤한 기운도 올라오던 때라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해내야지! 하며 용기 있게 들어선 숲.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사실상 숲이라기에는 도로와 주차장 사이에 난 나무가 무성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괜히 빠르고 당당한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왔다. 길에 떨어진 껌 종이가 괜히 수상해 보이고, 바람소리는 왜 이리 더 크게 들리는지. 버섯은 모두 독버섯처럼 보이는 긴장감 가득한 그 길이 갑자기 끝나고, 민망할 정도로 안전한 현대문명이 나타났다. 바로 주차장. 그리고 그 끝에는 핀율하우스로 이어지는 안내판이 있었다.

오드럽가드 미술관과 핀율하우스가 같이 운영되고, 둘 사이에는 작은 동산과 야외 전시물이 있었다. (미술관에서 티켓 구매 후 방문 가능한 곳)

 

핀율 하우스는 핀율이 그와 아내가 살았던 집으로 북유럽 디자인의 정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내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실내 이미지를 본 적이 있는데 실존한다니 안 와볼 수가 없었다.

옛날 집이라 그런지 천고는 낮았다. 하지만 단차로 나뉜 집안의 공간 분배 방식, 디자인과 컬러배합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내가 가장 오래 보았던 곳은 거실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곳, 주방이었다. 소인국 사람들의 공간을 엿보는 듯한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가구에 반해 널찍한 공간 활용도 인상적이었다.


핀율하우스의 부엌을 보는데 우리는 정말 이 시대의 디자인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어느 매거진에 소개되어도 손색없을 디자인. 유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요즘 사랑받는 디자인의 본고장 격인 이 공간을 와보니 그 사랑이 체감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알 수 없는 심심한 감정이 있었는데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이미 나는 그 북유럽 디자인을 추구하는 유행에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대학시절부터 '북유럽 디자인' 이름으로 배우원 가구와 패턴, 컬러, 디자이너, 건축 등 이론적인 것들을 요즘은 오리지널뿐 아니라 너무나 많은 카피로 뒤덮인 시장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정원을 둘러보니 여기에도 사과나무가 있다.


뮤지엄은 살짝 둘러만 보고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는 길에 또 마을이 있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멋진 차와 집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이 어딘가에 내 집도 하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니 이 동네가 편해졌다. 마을 중심에는 묘지 겸 공원이 있었는데 회색 하늘과 이 낯선 동네에 편안함을 느끼고 나니 스산함마저 친근하게 느껴졌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오후.

코펜하겐 중심은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파란 테슬이 달린 묵직한 키와 함께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을 특별히 준비했다며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귀여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카펫이 깔린 바닥, 꼭대기층답게 천장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자연광, 그리고 들어간 객실은 이미 2만보를 걸은 그날의 피로를 싹 잊게 해 주었다.

코코 호텔에 있는동안 야무지게 찍었던 거울샷. 놀랍게도 한번도 누구와 함께 탄 적이 없다.


여기서 잠시 1층부터 5층까지 걸어 다니며 구경한 호텔내부 사진 몇 장을 넣어본다.

중앙 계단으로 내려가다보면 중정이 보인다. ㅁ자로 생긴 호텔인데 저녁에 바 손님이 있어도 조용했다.

그리고 대망의 내부. 혼자 지내기에 아까울 정도로 예쁜 객실이었다.

꼭대기층에 층에 대각선으로 연결되는 창으로 시내가 잘 보이고, 하늘도 가까이 있는 듯했다. 밤에는 달과 별이 침대에 누워서 보일 정도. 넓고 깨끗한 화장실에 수납장, 책상까지. 부띠크호텔을 제대로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Epilogue

#1.

한국의 맑은 늦여름 날씨를 마음껏 누리다 코펜하겐에 갔더니 급변하는 날씨가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실 한국의 습한 여름과 달리 습도 낮은 선선한 여름 날씨도 새로웠지만 그건 적응보다는 기쁨에 버퍼링 없이 받아들여졌다. 반면 흐리고 어두운 날씨에는 '적응'이 필요했다.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며 여행 중간에 마음을 바꿔보니 오드럽가드 마을을 걸어 다니며 그랬듯이 금방 편해졌다.

여행을 하다 보니 환경과 운을 운운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내 의지대로 되는 일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거기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의 의지를 더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흘러가는 대로' 보다 '의지를 더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간다. 시간은 어차피 흐른다. 그 속에서 내가 얼마큼 의지를 가지느냐에 따라 마주한 상황은 기회가 될 수도, 혹은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 '그렇구나'하는 마음에 '그런데 왜?'라는 의문을 품으며 나에게 찾아오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바라보자고 생각했다.


#2.

코펜하겐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오늘은 모든 컬러에 회색이 섞인 탁하면서 차분한 색. 처음 이 기운을 맞닿들였을때는 우울함이 대부분이고 평범함이 그 사이사이에 존재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니 비가 온다고 찌푸리거나, 흐린 날씨에 우울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함, 차분함'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좋은 가운데 더 좋은 순간이 존재하는 그런.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8화.

코펜하겐 도심을 걸어 다니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보며 아름다운 쇼룸, 카페, 그리고 운하를 걸어보았다. 여행 중 흐린 날씨는 단 하루. 그날이 지났고, 눈부시게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혼자 여행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더 열심히, '잘' 살고 싶어 지는 이번 여행의 다음 기록.

사진으로 그 예고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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