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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학원의 매니저
06화
주르륵 눈물 속 '불안'을 봐주세요.
아이가 받은 60점을 귀하게 생각해 주세요.
by
michaela
May 17. 2019
"어제 TV를 봤는데요.. 강아지가.. 너무 나이가 들어서.. 앞을 못 봤는데요.. 결국 죽었어요.."
S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시집을 읽고 감동할 줄 아는 중학교 2학년 S, 감수성이 풍부해서 너무 좋은 것도 너무 슬픈 것도 많은 S가 충분히 슬퍼할 만한 사연이다.
그러나
등원해서 다짜고짜
"세상에는 왜 이렇게 슬픈 일이 많죠?"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S가 토해내는 감정이 슬픔보다 불안이라는 건, 뒤따르는 말들이 알려준다.
"저 작년에 국어시험 볼 때, 답안지를 밀려 써서 35점 받았어요."
"제 옆에 앉은 애는 벌써 시험 범위까지 문제집을 다 풀었어요."
두서없이 따라오는 시험 이야기를 듣다가 차분하게 한마디 했다.
"S가 시험 기간이라서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S는 지금 슬프다기보다 많이 불안한 것 같아."
"아니에요. 정말 슬펐어요. 할머니가 강아지를 업고 다니셨는데, 그 강아지가 죽은 거예요.."
"맞아. 죽은 강아지 때문에 슬픈 S의 감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이 작년에 밀려 쓴 국어 OMR 카드나 옆 친구가 다 푼 문제집이랑 관련 있는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야."
"매니저님 말씀대로 저 이번 시험 꾸준히 준비했고, 수학이랑 영어는 갑자기 성적 오르는 과목 아니니까 괜찮아요. 시험 여유 있게 준비하고 있잖아요. 불안하지 않은데요?"
아이는 내가 수차례 반복했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뇌었다.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매니저는 네가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까..
네가 노력하고 기대했던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망을 할까 봐 객관적으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점수를 얘기한 거야.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불안한 마음이나, 시험 잘 보고 싶은 마음 자체를 부정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오늘같이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자.
매니저랑 이렇게 이야기도 해 보고, 아까처럼 눈물도 흘려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해 질까 고민을 해 보자.
매니저가 또 어려운 이야기 하지?"
"예. 뭔가 알듯 말 듯해요. 그런데 마음은 좀 더 편해졌어요."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우고 한결 편해진 얼굴로 아이가 대답했다.
겨울방학 때부터 영어 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집을 몇 권 풀고, 인터넷 강의 들으며 예습하고, 문제집보다 국어 교과서를 먼저 읽어낸 아이의 점수는
영어 80점대, 수학 60점대, 국어 90점대, 과학 90점대 였다.
아이가 반에서 몇 등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가며, 친구들과 마냥 놀고 싶은 마음을 참아 가며, 핸드폰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자신의 책상에서 씨름한 것들이
동그라미 속에 녹아 있는 시험지가 반가웠다.
'sheet'와 'shoot'를 헷갈렸던 아이, 문제 푸는 속도도 느리고 계산 실수도 많았던 아이, 불안해서 답안지를 밀려 썼던 아이가 자신이 노력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점수에 담아온 게 기특했다.
이 기특한 마음을 어머님께 전하려 전화번호를 눌렀다.
"S 지금 놀러 나갔어요. 수학이 60점은 넘었다며 신나서 나가던데 본인은 만족스러운가 봐요. 해맑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결과가 나와봐야죠. 고생 많으셨어요."
특별한 감정을 보이지 않고 다소 쿨하게 하시는 어머님 말씀을 들으며 섭섭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간 틈틈이 말씀드리긴 했지만, 공부하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지 않은 어머님께서 아이의 노력을 생생하게 느끼기는 어려우시리라는 것을
내 아이가 그렇게 몇 시간씩 앉아서 공부를 했는데도 그깟 90점, 100점을 못 받는 게 어른들에게는 이상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96점을 받았는데 100점은 왜 못 받느냐는 말에 힘이 빠진다.
60점도 점수냐는 말에 상처를 받는다.
너처럼 하루에 4시간씩 공부를 하면 전교 1등 하겠다는 말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아이들이 받은 점수에 담긴 노력을 이해하고 봐줄 수 있는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50점도, 60점도 그 안에 아이의 노력이 담겨 있다면 그것을 귀하게 대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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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시험
노력
Brunch Book
이상한 학원의 매니저
04
나의 어린 스승
05
시험기간에는 친구와 유쾌하게 밥을 먹으라고 조언합니다.
06
주르륵 눈물 속 '불안'을 봐주세요.
07
아이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08
우리 애는 계획을 세울지 몰라요.
이상한 학원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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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a
현실적 낭만주의자 / 국어교사(기간제) 5년 / 학습매니저로 근무중 / 취미로 꽃꽂이 레슨을 받은 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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