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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학원의 매니저
07화
아이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우리 Y가 영어성적 보고 놀랐겠네요..
by
michaela
May 6. 2022
고등학교 1학년인 Y는 만인의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다.
또래 친구들에게 넓은 어깨를 자랑하고 싶어서 불쑥 푸시업을 하고,
중학교 동생들에겐 매너 있고 다정한 오빠가 되고 싶어서 사탕을 주기도 한다.
문득문득 너무 외로워서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노래를 부르는 Y는
주변 어른들에겐 예의 바르고 성실한 OO네 둘째 아들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을 때, Y는 나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자랑했다.
학교에서 칭찬받은 소소한 이야기들, 친구는 못 풀었는데 자기만 풀어낸 수학 문제,
주말에 새로 산 옷, 부쩍 단단해진 알통 등 Y에게는 자랑하고 싶은 게 차고 넘쳤다.
처음에는 맞장구도 쳐 주고 칭찬도 해 주다가, 어느 날 진지하게 얘기했다.
“Y야, 매니저가 보기에는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들에 신경 쓰느라
정작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어. 매니저에게 너무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돼.
나는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너에게 어렵거나 잘 안 된 것들을 두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후로 나는 Y가 공부한 내용을 자랑하면, 개념에 대한 정의부터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Y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자기가 며칠 동안 풀어낸 수학 문제집을 펼쳐놓고 설레발 치면
“넌 공부가 잘 안 되면 더 요란스럽더라. 너 요새 중3 기말고사 끝나고 공부에 몰입 안 되는 티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
여기 봐. 여기는 채점도 안 되어 있네. 이 문제 설명하면서 풀어 줄래?”
Y는 나의 쓴소리를 이겨내며 붕 뜬 마음을 달래곤 했다.
나의 쓴소리가 유독 달갑지 않은 날, 삐져서 하원을 했다가도 다음 날에는 밝게 등원을 해주는 Y가 나는 고마웠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때론 공부에 쏟기도 하고, 때론 다른 것들에 쏟기도 하면서 중3 겨울방학을 보낸 Y가
고등학생이 되어 첫 모의고사를 치른 후, 유독 아픈 날이 많아지고 공부에 집중을 못 하기에
나는, Y와 어머님과 3자 대면을 요청했다.
Y를 옆에 두고, Y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어머님과 공유했다.
“어머님, Y가 제 싫은 소리를 견뎌내면서 정말 잘 커줬어요.
제가 작년부터 고등학교 가면 이럴 거다.. Y랑 미리 얘기하고
어머님과도 공유했었는데,
아이들은 실제로 상황을 마주하면
당황스럽고 속도 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Y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을
Y와도 공유하면 좀 더 안정적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뵙자고 말씀드렸어요.
Y가 코로나 때문에 격리하면서 생활패턴 무너지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인데요..
이번에 국어랑 영어문제 푼 걸 보면, 기반학습 부족한 게 영향을 많이 미쳤어요.
Y가 독서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2학년 때까지 열심히 놀다가 3학년 되면서 진지하게 학습을 시작했기 때문에
긴 시험시간 동안 활자를 읽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특히, 영어는 중학교 때 잘한다고 생각했던 과목이라서 더 어렵게 느껴질 거예요.
중학교 시험은 정해진 분량을 달달달 외우면 해결되지만 고등학교 때는 그게 안 통해서 힘겨워할 거라고
어머님께도 미리 말씀드렸는데, Y가 이번에 크게 느꼈을 거예요.
Y가 수학은 좋아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투자해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점수를 잘 챙겨 왔는데
과학이랑 역사는 중학교때 시험 준비하면서 단기적으로 공부했던 과목이라 장기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과학 시간에 배가 아팠다고 하는데, 배가 안 아파도 풀 수 있는 문제는 없었겠다고 같이 얘기했어요.
저는 일단, Y가 성적에 안 들어간다고 모의고사 시작하자마자 엎드려 자지 않고 끝까지 풀어낸 후에
저랑 이렇게 분석까지 마무리 한 걸 칭찬해 주고 싶어요.
Y가 작년부터 원장님이랑 제 잔소리 들어가면서 이해하는 공부 하려고 부단히 애쓴 걸 어머님도 아시잖아요.
단기간에 성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을 걸 알면서도 방학 때는 하기 싫은 국어 비문학/문학 문제집 풀면서 고생했고요,
영어 단어 외우고 문법강의 챙겨 들었고요, 수학 인강 보고 개념서 읽고 문제 풀었어요.
Y가 지금 당장 해낼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른들은 알고 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자고 얘기했어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해낼 수 없는 수준의 공부를 요구받거나, 본인이 받아내기 힘든 성적을 앞세우면
오히려 공부를 손에서 놓아버리거나, 다른 것들에 몰두하거나, 시험 기간에 아프거나 하더라고요..
중간고사 준비하면서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Y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공부에 집중해 보자고 할 거예요. 강점인 달달달 암기도 열심히 하자고 할 거고요.
내신성적이 나오면 이번 모의고사 성적과 비교해 볼 거예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Y가 고등학교 2, 3학년이 되면,
몸도 더 여물어서 모의고사 보는 게 더 수월해질 수도 있고 여전히
취약한 점이 어려움으로 남을 수도 있어요.
어떤 결과를 얻게 되든
Y가 작년에 저 만나서 지금까지 성장해 준 것처럼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
후회는 없을 거라고 믿어요.”
“Y야, 혹시 어머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니?”
“아니요.”
“그럼, 학습실로 갈까?”
“예.”
“어머님, Y는 다른 사람들한테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아이인데, 부모님께는 그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저도 지난해부터 어머님과 상담할 때마다 어머님께 배우는 점이 있어요.
이렇게
좋은 부모님들이 아들 셋 키우시느라 고생하는 걸 Y가 알아요.
그래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 오히려 집중도 안 되고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 보고 중간고사 앞둔 지금 시기가 딱 그럴 때라서 뵙자고 했어요.”
“어떤 말씀인지 알겠어요.
안그래도 잘 본 수학 점수만 떠들썩하게 얘기하고, 다른 과목들은 등급을 한 등급씩 높여서 말했네요.
영어는 본인 성적 보고 Y가 놀랐겠어요.”
“예. 듣기평가에서 많이 틀린 게 신경 쓰이는지..
영어회화 시켜주시는 이야기도 불쑥하고, 뜬금없이 유학 이야기도 나오기에 연락드린 거예요.
엄마가 너 듣기평가 잘 보라고 회화수업 신청해 주신 거 아니라고, 듣기평가는 나중에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얘기해뒀어요.”
“고맙습니다. 또 이렇게 나눌 이야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예. 저도 감사해요.
어려운 일인 걸 아는데.. 어머님께서 이렇게 신뢰해 주셔서
Y가 저희 쓴소리를 소화해 내면서 잘 크는 것 같아요.
이번 상담이 Y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줬으면 좋겠네요.”
Y는 어머님이 다녀가시고, 정말 안정감 있게 중간고사를 잘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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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학원의 매니저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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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주르륵 눈물 속 '불안'을 봐주세요.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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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낭만주의자 / 국어교사(기간제) 5년 / 학습매니저로 근무중 / 취미로 꽃꽂이 레슨을 받은 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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