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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Oct 21. 2022

프롤로그

“언니, 화병꽃꽂이 하나 챙겨가세요.”

후배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건넸다.

“동생이 플로리스트예요. 졸업이랑 입학 시즌인데,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잖아요? 동생도 안 됐고, 화훼 농가도 도울 겸 제가 부탁했어요.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 어른들 보시기 좋게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빨강, 노랑, 주황, 흰색의 꽃이 초록색 소재와 어울려 꽂혀 있는 화병을 받아들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화병을 본 엄마가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옆에서 꽃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코로나 초기, 집단감염이 시작되면서 두려운 마음이 모든 사람들을 짓누르던 때였다. 아이들의 개학이 미뤄지고, 각국의 국경마저 폐쇄되던 시기였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불확실한 내일 앞에 놓여있는지.. 그 진실을 마주하며 당황스러워하던 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꽃이 전하는 위로와 힘을 경험했다.

 

집 전체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화병을 보며 후배에게 연락했다.

“네 동생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까? 친구에게도 꽃을 선물하고 싶어.”

 

얼마 후, 예쁜 꽃 사진들과 문자가 도착했다.

- 친구 분이 좋아하실 만한 색상을 골라주세요. 화병꽂이로 만들어서 배송해 드릴게요.

답장을 보냈다.

- 다섯 번째 스타일이 친구랑 잘 어울려요. 자연스럽고 수수하게 예쁜 친구거든요.

  

며칠 후, 친구가 꽃을 감상하는 아들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 꽃이 도착했어. 정말 고마워. 너무 예쁘고 향기도 좋아. 

  집에 화병이 없었는데, 화병도 맘에 쏙 들어.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풍경을 보고 있다가 기분전환이 된다.

테디베어 해바라기, 스카비오사, 조팝나무가 어울려 있는 화병은 친구를 닮아 있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해바라기를 보고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육아휴직을 하고, 6살짜리 아들과 집에 갇혀서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친구에게도 꽃은 위로가 되었다.


이때부터 꽃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전에 요란스럽게 시작했던 취미들은 추억의 물건을 하나씩 남긴 채 멀어졌다. 당장이라도 콩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날 것 같던 커피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서 배운 검도는 호구를, 생존을 위해 배운 수영은 오리발을, 두 달 만에 끝난 음악여정은 클라리넷을 남겼다.


이번에는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목적도, 꽃집을 차리겠다는 생각도, 플로리스트가 되겠다는 포부도 없다. 그저 내가 후배에게 받았던 것처럼, 내가 친구에게 전했던 것처럼.. 고된 하루를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활짝 웃을 수 있는 기쁨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일 우리 앞에 어떤 하루가 놓여 있든, 오늘은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후배의 동생에게 연락했다.

“스승님, 저에게 꽃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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