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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Oct 21. 2022

아웃라인을 잡으라고요?

Lesson 1


첫 수업은 원데이클래스로 신청했다.

“지난번에 화병꽂이 선물 받고 너무 좋아서, 꽃을 배우고 싶어졌어요. 일단, 원데이클래스를 받아보려고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면, 금방 흥미를 잃을 것 같아요. 스승님도 언니 친구랑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예. 그럴게요.”

 

문을 열고 스튜디오에 들어갔더니 노랗고 빨간 꽃들이 물통에 담겨 있었다. 동그란 해바라기에 저절로 손이 갔다. 아기 얼굴을 만지듯 꽃송이를 양손으로 감쌌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두 손으로 움켜쥔 것 같았다.


스승님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수업을 시작했다.

“아까 두 손으로 감싸 쥔 꽃이 테디베어 해바라기예요. 북슬북슬하게 생긴 게 테디베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해바라기 가운데 검은 부분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예쁘게 즐길 수 있어요. 실란토이 장미는 굉장히 탐스럽죠?”

“눈으로 포만감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큰 꽃들만 있으면 너무 단순할 거예요. 중간크기 꽃들 중 노란색은 메리골드고 빨간색은 거베라예요. 처음 하는 거라서 무난하게 노랑, 주황의 비슷한 색깔로 준비했는데, 빨간색 거베라로 포인트를 줄 수 있어요. 테디베어 해바라기랑 통일감을 유지하면서 크기로 변화를 주려고 헬리옵시스도 준비했어요. 잔잔한 마트리카리아를 사이사이에 꽂아서 빈 공간을 메워주면 풍성한 느낌이 들 거예요.”

“아직 뭘 하지 않았는데, 그 자체로 예쁘네요.”

“그렇죠? 자연에서 꽃들은 줄기와 잎들이 함께 있잖아요. 여기 있는 초록색 소재들이 꽃바구니에 자연스러움을 더해줄 거예요. 다양한 꽃들과 무난하게 어울리는 데다 다루기도 쉬운 레몬트리로 준비했어요.”


설명을 듣고 일어나 바구니 앞에 섰다. 물이 새지 않도록 바구니에 비닐을 깔고 플로랄폼을 잘라 넣었다.

“언니가 만들고 싶은 바구니의 전체 모양을 생각하면서 아웃라인을 잡아보세요.”

후배에게 선물을 받고 갑작스럽게 생긴 관심이었다. 장미, 해바라기, 튤립 정도의 꽃이나 구분할 줄 아는 내가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꽃바구니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얀 모니터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고심하던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들어오는 대로 장미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쭈뼛쭈뼛 플로랄폼에 찔러 넣었다. 장미를 하나 더 집어서 먼저 자리 잡은 장미 옆에 꽂았다. 세 번째마저 장미를 골라 가운데로 넣자, 스승님이 말했다.

“오늘 준비된 꽃들을 다시 살펴보세요. 이렇게 큰 장미들이 중앙에 모여 있으면 바구니 모양이 어떻게 될까요? 가운데로 큰 꽃들이 몰리고, 작은 꽃들과 소재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겠죠? 언니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거면 모를까.. 그다지 조화롭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처음 여기 들어와서 꽃 보고 설명 들을 때는 너무 신났는데, 사실 지금은 많이 당황스러워요.. 전체 바구니의 모양이 전혀 그려지지 않거든요.”

“맞아요. 꽃을 다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게 당연해요. 처음 수업을 받을 때, 꽃 한 송이를 들고 한참 서 계시는 분들도 있어요. 많이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제가 보이는 시범을 따라 꽂는 경우도 있는데, 언니는 그런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언니가 이렇게 먼저 꽂으면 제가 가이드 해드릴게요. 편하게 해 보셔요. 자, 여기 있는 장미를 조금 더 짧게 잘라서 바구니 앞쪽에 이렇게 넣어 볼게요.”

 

장미 한 송이의 자리를 옮겼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다른 장미 한 송이를 뒤쪽으로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송이의 장미가 먼저 자리를 잡은 후, 왼쪽 빈 공간에 해바라기 두 송이를 길이가 다르게 꽂았더니 조화를 이뤘다.

이후로는 어디에 꽃을 꽂아야 할지, 고민이 덜 됐다. 큰 꽃들 사이에 중간 크기의 꽃들을 넣어주고, 사이사이를 작은 꽃들과 초록색 소재들로 채우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가 만든 꽃바구니가 정말 만족스러운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요?”

“예. 이렇게 예쁘잖아요. 완성된 바구니를 보면 대부분 좋아하세요. 꽃들로 만들어진 동글동글한 아웃라인이 참 예쁘죠? 그런데 강아지풀을 넣어주면 분위기가 또 달라요. 하나 넣어볼게요.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빼도 되고, 더 꽂아도 돼요.”

“넣은 게 좋아요. 멋스럽달까? 이 강아지풀이 만들어내는 라인이 마음에 들어요. 강아지풀이 들어오니까 바구니를 보고 있는데도 해바라기로 가득한 들판이 떠올라요.”


처음으로 만든 꽃바구니를 사진에 담았다. 바구니를 품에 안은 내 모습이 어찌나 즐거워 보이던지.. 몇 달이 지나도록 이날 찍은 사진을 가끔씩 꺼내 보았다.

“언니가 재미있게 하니까 저도 즐거워요. 집에 가서 오늘 바구니 만든 과정을 순서대로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다음에 바구니를 만들 때는 당황스러움이 덜 할 거예요.”


집에 돌아와 꽃을 앞에 두고, 레슨 과정을 떠올리며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집과 일터를 오가며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것을 접하며 느낀 당황스러움과 막막함이 오히려 신선한 자극으로 받아들여졌다. 익숙하고 편한 것들만 찾으며 새롭고 낯선 것이 부담스러워질 때면, 이 기분 좋은 자극을 다시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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