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이야기' outro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글들은 나 자신의 존재 위로 덮어놓았던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겨내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지 못해 왔었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 여러 껍데기들을 나 자신 위로 덮어놓았던 것은 내 존재가 너무나 보잘것없고 약한 것처럼 느껴져서 해온 일들이었는데, 막상 그 모든 것들을 치워보고 나니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머릿속에서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외쳐왔었는데 그것은 생각에만 그칠 뿐이었고, 이제야 뚜렷한 진실이 되어 비로소 내 마음에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지나고 난 뒤, 나는 다시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 걷어낸 뒤, 나라는 존재는 진짜 무엇일까? 내가 가장 잘하는 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만화, 음악 등등등 다양한 취향들이 나의 존재를 말하는 것일까.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여기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었는데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나서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기질과 내가 살면서 좋아하게 된 것들을 총체라는 것.
삶을 살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잊고 살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가 보면 나 자신을 주장하기보다는 회사 윗선에 내린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고, 결혼을 해서 애를 키우다 보면 나 자신이 중요하기보다는 나의 어린 자식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때가 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보다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더 많다. 이러한 삶 속에서 매 순간순간마다 ‘나’라는 존재를 잊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도 전에 그저 살아가는 것이 바쁠 때가 더욱 많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고 나 자신을 꾸준히 찾아가고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수많은 타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타인과 나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며,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표이다. 이 불가항력 한 삶 속에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기질들을 기반으로 내가 살면서 좋아하게 된 것들을 하나씩 쌓아 나가다 보면 나에 대한 청사진을 매 순간 조금씩 그려나갈 수 있다. 만일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내 삶은 없어지고 오로지 타인의 삶만이 존재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기질을 갖고 있고 각자 다른 것들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성질을 가진 존재들이 되어간다. 우리가 사는 삶의 다양함은 바로 여기서부터 나오며 사람들의 기질과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존재는 말 그대로 유일무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당신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와도 같을 수 없는 단 하나만 있는 존재로서 빛이 난다.
처음 글을 시작했을 때 인지하지 못했던 이 결론을 마주하고 나니 지금까지 내 존재 위로 씌워왔던 껍데기들이 모두 '나'라는 조각을 찾기 위한 하나의 단서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회사/일, 재능, 나이, 외모, 결혼, 임신, 취향, 가족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것들과 나의 존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친구, 인맥, 재산, 명품 등등등 다양한 사람들만큼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연결시키는 것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가 모든 이들이 다 똑같이 공감할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어딘가 모르게 당신과 닮은 부분은 발견했다면 당신 혼자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라고 작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삶에서 내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지만 나라는 존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렇기에 당신 자신의 존재 위로 아무것도 덮어 씌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길게 늘어놓았지만 결국에는 '우리 존재는 있는 그 자체로 귀하다'는 위로를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 건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