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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Nov 11. 2023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선택하는 의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컨택트>의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컨택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년도 하반기 기대작 중 하나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관람하고 왔다. 개인적으로 올해 개봉하는 작품들 중에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으나,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는 여태까지 관람했던 미야자키 햐아오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가 되어버렸다. 전체적으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불호'인 영화였다. 


사실 이러한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 영화의 어떤 한 장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본 다른 이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상에서 여러 영화들을 떠올리는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묘사하는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영화의 원제는 <Arrival>이다.)가 떠올랐다. 그 장면은 탑 속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마히토, 히미, 키리코, 왜가리가 무너지는 그 세계를 탈출하려고 하는 장면이었다. 마히토는 자신의 어머니인 히미가 그가 원래 왔던 세계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그를 막아선다. 그가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히미는 나중에 커서 병원에서 난 화재로 인해 죽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아서는 마히코를 말리며, 히미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그래도 너를 낳는 것은 멋진 일이잖아!" 이렇게 말한 히미는 자신이 현실에서 사라졌던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컨택트>에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들의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 그 미래 속에서 루이스는 자신과 함께 일한 동료인 이안과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딸을 낳는다. 하지만 그 딸은 희귀병으로 인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루이스는 이안과 함께 할 결심을 한다. 


사실 이 두 장면을 비교하기 두 영화는 서로 너무나도 다른 결을 가진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이 두 장면이 연결 지어졌던 이유는 어찌 보면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모성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마히토와 히미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아닌 거의 친구와도 같은 존재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관계는 이 영화가 모성을 신격화된 느낌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히미는 큰할아버지가 만드는 세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는 하나, 현실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런 히미가 아직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임신-출산에 대해 '대단히 멋진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린 여성이 자라면 당연하게 자신의 자식을 아끼는 어머니가 된다는 모성 신화를 마치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인이 된 히미와 마히토의 관계에 대해서 영화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으나, 친구와 같이 노니면서도 때로는 마히토가 위험에 처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히미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대중이 갖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전, 히미가 말하는 대사가 더욱 동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미래 속에서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일보다 자신의 아들은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명랑하게 웃는 히미의 모습으로 인해 더욱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컨택트>에서는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대로 어머니가 자신의 자식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상황이 드러난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깨우치면서 보통의 인간들이 이해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 자신의 미래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보고, 그 아이가 더욱 먼 미래에서 어떻게 될 것까지도 보게 된다. 루이스는 미래를 보고 나서 그 미래를 보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미래를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가기로 결심한다. 루이스와 히미 모두 자신의 미래를 알고 그 미래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질 결과를 알고도 선택을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식을 위해 숭고한 사랑을 선택하는 인물들이지만, 두 인물의 다른 점이라면 히미가 자신의 아들을 낳는 일에 대해 '멋진 일'이라고 수식어를 쓰는 것과 달리, 루이스는 자신의 딸을 맞이하기 위해 딸이 맞이할 죽음까지도 안고 사랑하는 것을 묵묵히 택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이 아기를 낳는 순간 갖게 되는 모성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모성의 뜻은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ㆍ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된 여성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아기가 태어나면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그대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서 히미가 말하는 대사는 감동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다소 이질감이 들었었고, 그렇기에 <컨택트>에서 루이스가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말하는 대사가 더욱 생각이 많이 났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자체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이 내용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조금 더 히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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