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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Dec 11. 2023

억압된 시대, 영화적 상상력으로 해방하기

<엘리자벳과 나> 단평


※ 개봉 전 <엘리자벳과 나> 스크리너를 제공받아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 엘리자벳 황후는 그녀가 죽은 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이러니한 죽음까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요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하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여기,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색다른 시각으로 다룬 영화가 있다. 바로 12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엘리자벳과 나>이다.



<엘리자벳과 나>는 엘리자벳 황후가 죽는 날까지 함께 있었던 시녀 ‘이르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42살의 나이인 이르마는 결혼을 하거나 수도원에 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운명 앞에서 두 선택지를 모두 뒤로 하고, 황후인 엘리자벳을 보필하는 일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황후가 살고 있는 그리스로 간 이르마. 그곳에서 만난 황후는 변덕스러우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에게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이르마는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필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점점 그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영화 초반 엘리자벳은 그림과도 같이 아름다운 그리스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며 무위도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리스는 그녀에게 있어 피난처이다. 남편과 결혼했지만 억압된 궁정생활과 결혼생활이 싫었던 그녀는 그리스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나름대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실 그녀의 내면 속에는 깊은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시녀들을 곁에 두고 그들과 의존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르마와 엘리자벳의 만남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이르마는 42살이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노처녀’이다. 100년 전 시대 속에서 결혼을 하지 못한 여자들은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세상의 규칙을 벗어난 돌연변이처럼 여겨졌기에 이르마의 어머니는 이르마를 몹시 못마땅해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완전해 보이는 이들은 이르마가 던진 말 한마디로 인해 가까워진다. 이는 엘리자벳과 이르마가 처음으로 같이 나간 하이킹에서 이르마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엘리자벳과 이르마는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황후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엘리자벳, 세상 속에서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이르마. 서로에게서 어딘가 닮은 모습을 발견한 두 사람은 하나로 겹쳐지고 이들의 유대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특히 이러한 지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순간은 엘리자벳과 이르마가 각각 자신의 어머니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이다.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코르셋을 조이고 자신의 식사를 제한하던 엘리자벳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라고 강요받는다. 몇 번 어머니의 권유를 거부하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로부터 음식을 받아 마구 먹기 시작한다. 옆에서 엘리자벳을 지켜보던 이르마는 그녀를 따라 음식을 입안으로 마구 욱여넣는다. 밤이 되자 엘리자벳과 이르마는 화장실에서 자신들이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다. 이 장면은 이들이 마치 한 몸처럼 서로에게 동화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초반 처음 그리스에 도착했을 때 이르마는 밤에 엘리자벳이 음식을 차려놓고 먹다가 갑자기 부엌으로 가서 토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때 이르마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해서 배고파하던 시절이었고, 엘리자벳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영화 중반쯤 지나고 난 뒤, 이르마는 누구보다도 엘리자벳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해를 넘어서 그녀와 완전히 동화되게 되었다.


엘리자벳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노화를 두려워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들어가 있지만 황제가 자신에게 주는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황제가 하사하는 음식조차도 그녀는 자신의 입에 넣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황제의 소유욕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의사를 드러낸다. 엘리자벳이 음식을 통해 거부하는 의사를 드러낸 것은 실제 현실에서는 황제를 강하게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벳과 이르마가 그리스에서 행복한 생활을 보낼 때 엘리자벳의 남편 요제프 황제가 찾아온다. 엘리자벳은 겉으로는 그를 환대하는 것처럼 보이나, 부부생활에서 있어서는 그와 거리를 두려 한다. 결국 그녀에게 거절당해 화를 참지 못한 황제는 그녀에게 다시 황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며 억지로 관계를 갖는다. 엘리자벳은 한 나라의 황후였지만, 그녀가 현실 속에서 그녀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궁으로 돌아간 뒤 열린 큰 행사에서 걸어가다가 중압감에 혼절한 엘리자벳은 결국 황제에게 궁을 떠나서 살겠다고 말한다. 이르마는 엘리자벳을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떠나면서 이동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딘가 안정되지 못하고 쫓기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살고 있던 그리스에서, 황제로 인해 다시 부다페스트로 왔다가 그 이후에는 영국으로 넘어가며 여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세상에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이방인의 모습과도 같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끝이 날까. 영화는 역사적 사실 위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여 끝을 맺는다. 그 해석은 역사적 사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참으로 개인적인 해석에 가까우나, 영화에서 엘리자벳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본다면 그 ‘해방’이야말로 두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결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했지만 제대로는 알 수 없었던, 시대 속에서 억압받아왔던 두 여성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어나가고 어떻게 서로 결말을 맞이하는지를 보고 싶다면 <엘리자벳과 나>를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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