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단평
※ <오펜하이머>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3년 8월 15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인 <오펜하이머>가 개봉하였다. 개봉 당시 놀란 감독의 신작 관람이 다소 꺼려졌던 것은 이전작인 <테넷>이 영상미 면에서는 완벽했으나 시간 순서를 꼬아 놓은 복잡한 연출로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오펜하이머>에서도 놀란 감독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평범하게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고, 세 가지 시간을 영화의 타임라인에서 뒤섞어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더없이 탁월한 연출이었다.
원자폭탄을 발명한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 이후 오펜하이머가 받게 되는 청문회, 그리고 오펜하이머와 갈등을 빚었던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청문회까지 영화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시간대를 교차로 보여준다.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적성을 찾지 못해 유학생활 중 방황하다가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가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게 될 때까지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인 것처럼만 보인다. 영화 속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청문회를 통해서 오펜하이머가 모든 이들이 존경할만한 단 하나의 흠도 없는 완벽한 과학자가 아니라 그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어두운 진실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스스로를 계속 힘들게 만들었다. 또한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저질렀고 불륜 상대인 여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내 앞에서 좌절하면서 크게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청문회 장면들은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은 스트로스 제독이 그를 몰락시키기 위해 빈틈없이 준비한 완벽한 무대였지만 동시에 오펜하이머가 한 인간으로서 어떤 또 다른 면을 갖고 있는 인물인지를 드러나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청문회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숙청될까 봐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증언했다. 그가 과학자로서 어떤 업적을 해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조국에 충성스러운 인물인지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인물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오펜하이머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청문회로 인해 보안 인가 갱신을 받지 못한 오펜하이머는 점점 몰락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 겨우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했지만, 자신이 개발한 원자폭탄에 대해서도 권한도 잃었고 명예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사람들로부터 마녀사냥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손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과학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이뤘지만 그가 개발했던 무기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죽이는데 일조했다. 오펜하이머는 독일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최악을 면하기 위해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는 최선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는 똑같이 사람을 죽이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 것이다. 청문회는 다른 이들이 오펜하이머를 취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리이면서 동시에 오펜하이머 본인도 타인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이 얼마나 아이러니함으로 가득 차 있는지 돌아보는 자리였다.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실험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계산에서 원자장치의 연쇄 작용이 멈추지 않는 다면, 단 한 발로 지구의 대기원이 모두 불타버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그럴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계산이 나온 덕분에 트리니티 실험은 원래대로 이뤄졌지만 이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사상자 및 피해자들이 나오고,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까지 개발되면서 오펜하이머가 말했던 0에 가까운 가능성은 결국 다른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원자폭탄을 만든 자신도 이후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치는 인물로 지정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종전시키는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영화 속 나오는 대사 속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원자폭탄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0에 가깝다는 것. 완전한 0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며,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묘사 같이 보인다. 모두에게 선망받는 과학자였지만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으며, 그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사람들도 모두 불완전한 인간들이었기에 그의 삶을 그렇게 이끌고 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를 드러내는 영화가 아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굴곡을 경험했는지를 통해 한 인간이 가진 ‘인간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드러내는 영화이다. 천재 과학자의 특별한 인생이 우리 개개인의 인생에 모두 녹아들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양면성이라는 본질에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