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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May 25. 2018

내가 잠시 멈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야!

내가 있을 자리는 내가 만들어나가는 <스탠바이, 웬디>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최대한 <스탠바이, 웬디>의 결말을 배제하고 작성하였으나, 결말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스탠바이, 웬디> 참으로 따뜻한 영화이다. 수많은 영화들이 빠르고 급격한 호흡을 주로 이루는 것과 달리, <스탠바이, 웬디>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관객들과 웬디가 같이 걷게 만든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많은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기는 힘든 영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장에서 2시간 동안 내가 가진 현실을 잊을  있게 만드는 오락영화들을 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신 <스탠바이, 웬디> 지향하는 바는 정확하다.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나오는 확실한 '변화'. 주인공이 어떠한 식으로 변화하고 성장할지를 중심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에게 영화의 제목처럼 "Stand by"라고 말하지 않고 "Ready, Action!"하라고 말한다.



영화 속 '웬디'는 일반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자폐 증상을 갖고 있는 웬디는 일반 사람들처럼 버스를 타고 물건을 사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너무 어렵고, 샌프란시스코 도시에서 마켓 너머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어렵다.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웬디가 다른 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세상에 울타리를 치고 일반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구분을 지어놓았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이에 대한 구분은 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방편인 동시에 개개인을 억압하는 가장 큰 족쇄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삶의 안전한 경계를 위해서 이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와 구분되는 삶을 사는 것이 익숙했던 '웬디'. 그렇기에, 웬디의 자리는 자신의 언니 오드리와 센터장님인 스코티가 지정해준 센터 안에 있었다.



남이 지정해준 자리에서 웬디는 매일 정해진 일과대로 살아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어 동생을 센터로 보냈던 언니 오드리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스코티처럼 웬디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 충실히 살아왔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 날 한 가지 목적이 생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트렉' 팬 시나리오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제출하는 것. 그녀는 이 상금을 타고 이 상금으로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하여, 센터를 벗어나 자신의 조카 루비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고자 하였다. 언니와의 감정적인 만남으로 인해 스타트렉 시나리오를 우편으로 제출할 수 없게 되자, 한 번도 센터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웬디는 결국 자신이 직접 LA로 가서 시나리오를 내기로 결심한다.



모든 성장영화의 스토리가 그러하듯, 웬디가 시나리오를 내기 위해 가는 여정은 쉽지 않다. 버스를 타고 순조롭게 가다가 같이 여행에 따라나선 피트가 실례를 하는 바람에 쫓겨나고, 걸어가다 만난 여자와 남자에게서 자신의 아이팟과 가진 돈 전부를 빼앗기기도 하고, 우연히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LA로 가던 중 언니와 센터장님에게 쫓겨(?)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도망가다가 시나리오를 떨어뜨려 100페이지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웬디의 여행길은 마치가 우리가 사는 삶처럼 매 순간 고난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도 웬디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모든 우여곡절 끝에 파라마운트 픽쳐스에 도착해서 우편으로 도착한 시나리오만 받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직원의 단호함에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시나리오 취합하는 곳에 넣어버린다. 이때 그녀가 직원에게 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저 누군지 모르시죠?"라는 대사는 일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흔히 재벌들이 이야기하는 "너 내가 누군지 몰라?"하는 대사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웬디의 대사는 말 그대로 자신의 정체를 그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남들에게 나는 아무런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도 같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한 것이 아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웬디는 이 길면서도 짧은 여정을 통해서 그것을 몸소 보여준다.



웬디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름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기에 결과에 대해서는 함구하도록 하겠다. 영화가 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웬디가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왔는가 일 테니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문득 영화의 첫 오프닝이 생각났다. 영화는 광활한 우주 속에 포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우주선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웬디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의 일부분인 이 장면에서 웬디는 내레이션으로 우주선을 나타내는 그 빛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한다고 말한다. 처음 웬디의 상태는 이와 같다. 정해진 규칙과 정해진 룰대로만 살아왔던 인생. 누군가 정해주는 방식을 따라 이동해왔던 한정적이고 폐쇄적인 인생. 수많은 별들이 떠 있지만, 그녀의 삶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으며,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서 이 장면이 가진 의미는 달라진다.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은 바꿔 생각하면 내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삶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내 삶도 내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 웬디는 그렇게 '나의 자리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웬디에게도 두려움은 존재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다른 누가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던가. 웬디는 그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갔다.



때로 세상은, 때로 나 자신조차 나에게 멈춰있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멈춰있는다면 지금 당장 몸은 편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마음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힘들 때는 잠시 쉬어가도 된다. 걸음을 멈춰 서고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더 살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영원히 멈추지는 말자. 멈추기에는 아직 내가 걸어가 보지 못한 길들이 너무 많으니까. 잠시 멈췄다가 더 큰 추진력을 얻고 나아가자. 그렇게 'Stand by'했다가 'Action!'하고 튀어나가자. <스탠바이, 웬디>는 우리가 삶에 지쳐서 잃어버렸던 단순하지만 명료한 진리를 따뜻하면서도 너무 착하지만은 않게 보여주었다. 살다가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면 누구든 <스탠바이, 웬디>를 보고 잠시 쉬었다가시기를.



+덧 : 영화 속에서 '웬디'와 유일하게 클링온 어로 말(?)이 통했던 사람은 바로 같은 덕인 경찰 아저씨였다. 다시는 덕을 무시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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