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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Dec 30. 2017

우리 모두에게 기적 같은 우주

<원더>처럼 서로 다른 우주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는 <원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더>는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영화이다. <원더> 속 주인공인 ‘어기’가 독특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특별하고, <원더>가 마지막으로 주장하는 메시지가 일반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다는 측면에서 평범하다.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를 보았을 때 모든 이들은 ‘어기’가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어떻게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세울 것인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이 영화는 그런 기대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이 영화가 좀 더 독특한 지점은 단순히 ‘어기’의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기’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다른 이야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성숙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것은 나와 부딪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조건 악인으로 모는 것이 아닌, 다른 이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특히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항상 아픈 자기 동생으로 인해 어머니에게 늘 뒷전이었던 누나 비아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이런 류의 영화 속에서 가장 소외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캐릭터 1순위는 형제 혹은 남매, 자매였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비아와 갑자기 틀어지게 된 친구 미란다의 이야기까지 보여준다.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사실 영화의 중심 스토리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기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영화 속에 녹아들면서 영화는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고,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메시지를 더욱 강화한다.  



학교에 가기 전 어기는 자신의 외모로 인해 자신만의 우주 속에 갇혀있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집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어기’는 태양이었고 부모님과 누나는 그 주변은 배회화는 행성들에 불과했다. 우주 속에는 수많은 은하계들이 존재한다. 혼자 만의 세상 속에 살고 있던 어기는 세상 속으로 나가서 타인들의 세계 속에 녹아들면서 거기서 배워야 할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하게 된다. 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어기만의 이야기를 볼 것이라 기대했던 관객들은 각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이야기들을 우리 삶 속으로 대치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우주가 있다는 것. 서로 다른 우주를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비로소 인간다움을 배우고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원더>가 마음에 들었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해왔던 나의 삶에게 무조건 다른 이를 이해하라고 하는 것도, 무조건 네가 옳았다고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 점만으로도 영화는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물론 각자 다른 사정이 있다는 것이 나와 다른 이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어기를 악의적으로 대했던 줄리안에 대해서 영화는 그를 학교에서 떠나보냄으로써 확실한 태도를 취한다. 그렇지만 이 줄리안에 대해서도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와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들의 부모는 어떻게 보면 (특히 그 엄마는) 우리가 영화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이지만 줄리안은 다르다. 학교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줄리안은 그때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감을 실감한다. 학교를 떠나면서 줄리안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사과를 한다. 줄리안이 전형적인 타입의 캐릭터였다면 이미 떠나기로 한 것이 결정된 순간 사과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교장 선생님을 향해 건넨 사과를 보면서 아이들 또한 어른들이 가진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처음 어기가 등교했을 때, 아이들에게 받던 차별의 시선 또한 아이들이 가진 본성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은 ‘폭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원더>는 ‘어기’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일반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절대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줄리안이 강제 전학당하기 전 어기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며 그 아이의 얼굴로 인해 우리 아들이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고 하는 줄리안 어머니의 이야기에 교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 아이의 얼굴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하죠.” 여기서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가 정확하게 드러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이 결코 폭력의 정당성이 될 수 없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그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나와 다름으로 인해 그 사람을 굴복시키고 사회가 정한 평범함의 기준에 맞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 영화의 표면은 따뜻한 성장 영화이지만, 그 내면 속에서는 이처럼 진중한 문제들도 가볍지 않고 사뭇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할리우드의 새로운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였다.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얼굴을 비춰왔고, 그녀의 대표작이 로맨틱 코미디였기에 그녀에게서 어떤 정극 연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수많은 캐릭터들 가운데서 하나의 교집합으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고, 영화의 결을 한층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그녀의 연기를 그동안 얼마나 평가절하해왔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어기가 자신의 엄마에게 엄마가 나의 엄마니까 자기 자신을 이상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화내는 장면이었다. 어기의 말에 어기의 엄마 이사벨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넌 이상하지 않아. 다른 어떤 이들보다 내가 너의 엄마니까 더욱 내 의견이 중요해” 이 대사가 가진 힘을 더욱 끌어올리는 줄리아 로버츠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나 이 극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그녀뿐만 아니라 오웬 윌슨이 맡은 아버지 캐릭터 스토리도 조금 더 드러났으면 영화가 훨씬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원더>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영화이다. 극장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차별 그 자체를 집중하기보다는 차별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과 연대해나갈 것인가를 주목한다. 연대의 방법에 대해 <원더>는 단순히 그것을 가족들의 사랑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나와 다른 타인에게도 사정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을 통해 내가 받은 상처를 억압시키지 않고 나의 사정과 타인의 사정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이 두려워 나가는 것을 포기했던 어기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으로 나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 경험 속에서는 기쁨과 아픔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 어기는 영화 속에서 언젠가 우주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 보기에 그는 이미 우주 속에 와 있다. 그가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왔을 때, 그곳은 이미 우주나 다름없다. 집이라는 지구를 떠나서 현실이라는 우주에 안착한 소년 어기. 집을 떠나 험난하면서도 먼 길을 헤맸던 소년의 우주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졸업식 엔딩처럼 그 소년은 언젠가 모든 이들로부터 환영을 받아 다시 그 땅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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