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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화 Jun 02. 2021

공황발작 5초 전

프리랜서의 작업 일지 #2_ 어느 완벽주의자의 바닥


공황발작 10초전_프리랜서의 작업 일지(1) 보고 오기 

https://brunch.co.kr/@orogio/24




보름째 비가 퍼붓던 여름날이었다. 여성영화로 유명한 플랫폼에서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여성노동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온라인으로 강의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쫄깃해졌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한 권 냈다고 이런 제안을 받는 것이 황송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강의하다가 내 밑천이 드러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 자리에 어울릴 만한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여성노동에 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있고, 깊고 풍부한 시선으로 영화를 읽어내는 평론가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제치고 내가 과연 ‘여성’과 ‘영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일주일을 고민하던 나는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안전한 곳에서 똑같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처음 메일을 열었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에는, 불안뿐만 아니라 설렘과 흥분도 섞여 있었으니까.  


호기롭게 강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막상 영화를 보고 강의 스크립트를 짜려고 하니,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관련 자료를 찾고, 여성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앓아누웠다. 잘 썼다. 다들 야속하리 만치 글을 잘 썼다. 감독, 배우의 필모그래피부터 계보가 어쩌고, 최신 젠더 이슈까지 줄줄 꿰고 있어서 나는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새벽에, 비는 오고, 내 글은 쓰레기에, 나도 쓰레기 같고.


그렇게 글이 안 풀려서 끙끙 앓던 차에 온라인 특강을 맡은 강사들의 라인업이 공개됐다. 성소수자단체 대표에, 영화감독에, 영화기자까지 요즘 이 동네에 알아준다는 사람은 다 모여 있었다. 심지어 내가 이 연강의 첫 번째 타자였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도망가자, 지구 밖으로 나가야겠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아무리 현실을 부정해 봐도, 눈뜨면 비 내리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마는 연일 기록을 갈아치웠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나갈 수도 없다. 매일 똑같은 날씨, 똑같은 장소에서 컴퓨터를 켜면 똑같은 대목에서 커서가 깜빡거린다. 글 감옥에서 나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그날 밤

     

어쨌든 나는 먹고살아야 하는 프리랜서다. 문어발처럼 여러 가지 일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일마다 쓸 수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정해져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잡아뒀던 영화 강의가 시간을 하마처럼 잡아먹고도 진척이 없자,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의 스케쥴 

메인 프로젝트 = K와 함께하는 교육 및 편집 업무. 7월~8월 중순까지 끝내야 함. 8월 1~2주가 정점. 

사이드 프로젝트 = 여성영화 강의. 8월 1주에 강의 들어가기 전, 7월 말에 준비를 끝내둬야 함.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K와 함께하는 일은 내 생계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메인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이 일을 진행하는 한 달 반, 그중에서도 2주간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그 기간은 반드시 비워놔야 한다. 교육이 끝나고 나면 40명이 한 번에 인터뷰 기사를 보내오는데, 이걸 읽고 신속하게 피드백해줘야 한다. 이때는 보통 하루에 10개씩 기사가 메일함에 쌓인다. 


답신해야 할 기사 3일치가 밀린 날이었다. 메일이 그렇게 빼곡하게 밀린 적은 처음이었다. 앞에는 기사 피드백 메일을 달라고 빚쟁이들이 달려오는데, 뒤에는 손도 못 댄 영화 강의 자료가 남아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나는 포기하지도 나아가지도 못한 채 좀비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만 속절없이 흘려보내던 날이었다. 새벽 5시,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았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늘 뭐했나, 내일은 어떻게 하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말 그대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숨을 크게 쉬어 봐도 소용없었다. 심장박동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심장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더니 나를 압도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남편을 깨워 붙잡고 나는 겨우겨우 소리 쳤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떡하라고!



그놈의 라인업 얘기다. 온종일 잘난 사람들과 비교하고 또 비교하느라 나는 먼지처럼 작아져 있었다. 참으로 못났다. 지금 봐도 볼썽사납다. 남들이 나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나 혼자서 비교하고 쭈글이가 되어 있단 말인가. 남편이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달래는데 내 입에서는 또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거짓말, 아무도 날 안 도와줄 거잖아!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야. 다들 자기 먹고사는 거밖에 관심 없어.

그때 엄마 이혼했을 때도, 내가 대학갈 때도,
아무도 안 도와줬잖아! 내가 다 알아!


가끔 잊고 있던 과거가 불쑥 튀어나와 자기 존재를 과시할 때가 있다. 다 잊고 산 것처럼 굴어선 곤란하다며, 넌 나로부터 절대 도망갈 수 없다고 엄포를 부리는 순간이. 15년도 넘은 일이 왜 지금에서야 고개를 내미는 걸까.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이런 기억들은  숨죽이고 있다가, 버튼만 눌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되살아난다. 기억의 회오리는 도움이 절실했지만 외면당하기 일쑤였던, 그 무력한 시절로 나를 데려다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10대의 너와 30대의 너는 정말로 다른 것 같니? 과연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천만에! 넌 너야. 죽을 때까지 너라고. 멀리 온 줄 알았는데, 과거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오랜 세월 나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작은 일에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재미있게 도전하는 법? 그런 건 모른다.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면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밖에는.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대처능력은 과신하지 않는다. 그게 나를 지켜온 생존방식이다. 


현재로 돌아와 보자. 강의를 펑크내고, 마감을 못 지킨다고 인생이 끝나기야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상황을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일을 제때 못해내면 업계에 소문이 돌 테고, 그러면 일감이 줄어들어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테고, 이젠 다른 회사에 취직도 못하는데, 내 커리어는 이걸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암전. 이 극단적인 세계에서는 아무도 나를 돕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구제할 수 있다.


못난 놈들이 모여 세상을 구하는 서사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믿진 않는다. 그것은 판타지다. 현실에서 못난 놈은 잘난 놈한테  밟히기 일쑤다. 요새는 잘난 놈들끼리 더 잘 뭉친다.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벽을 쌓고 성을 짓는다. 못난 놈들끼리의 연대? 사실 나는 못난 놈 대열에 끼고 싶지 않은데…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누가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나는 그렇게 울다 지쳐 까무룩 잠들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어나보니 왠지 상쾌했다. 전날 내뱉은 말들이 혀끝에 맴돌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노바디, 낫씽, 자격 없음. 이 말이 주는 해방감이 있다.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대단한 글쟁이도, 페미니스트도, 영화평론가도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해버리면 그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책이기도 하지만 방패가 되기도 하는 이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날 저녁, 기운을 내서 상담에 갔다. 불안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내게 상담자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만두라고, 강의고 편집이고 다 때려치우라고, 그렇게 일하다가는 진짜 공황이 올 거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나는 공황이 오는 것보다 일거리가 끊기는 게 더 무섭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상담자가 애가 타서 소리쳤다.


왜 그렇게 완벽하게 하려고 해요?
백 퍼센트 다하지 말고, 반만 해요. 반만! 그래도 다 되니까.
 
세상이 미쳐서 당신 같은 워커홀릭더러 일 잘한다고 하죠?
정신 차려요! 자기를 챙기라고요!


나는 밖에서의 인정을 갈구하고 있는데, 상담자는 나를 쳐다보고 걱정해주고 있다. ‘뭐지, 나를 나보다 더 생각해주는 사람이 여기 있었네.’ 그 불 같은 따뜻함에 나는 머쓱해졌다.


잊고 있던 마음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숱한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 글에 등장시키지 않은 조연만 여섯이다. 나는 너무 불안했던 나머지, 생각나는 사람마다 도움을 청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실질적인 도움과 함께 마음도 내어주었다. 새벽에 깨어 나를 위로한 남편은 또 어떤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에 내가 함께 있으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과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손을 뻗으면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다. 용기를 내야 한다. 이미 반쯤 망했다고, 못해먹겠다고, 백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메인 프로젝트 담당자인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황이 오기 일보 직전이니, 일주일만 마감을 늦춰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K는 담담한 어조로 괜찮다고, 알았다고 했다. 휴대폰 너머로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모양이 눈에 선했다. 프로젝트 일정이 빠듯한지라 이렇게 되면 전체 일정이 뒤로 밀리게 된다. 비상이다.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다. 적어도 K라면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렇게 번 시간으로 강의자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강의 당일, 출발하기 직전까지 나는 PPT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반만 하라는 상담자의 말이 귓가를 때리는 듯했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다. 카메라 앞에 서서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너무 떨리네요. 열심히는 준비했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막상 본론에 들어가니 말이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그동안 강의 자료를 만들면서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몇 번이나 시연했는지 모른다. 청중들은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다.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 말라붙은 식은땀 사이로 옷자락을 펄럭이며 생각했다. 이렇게 잘할 거면서 나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가만 보면 나를 가장 못 믿는 건 바로 나다. 긴장이 빠지면서 허탈감이 찾아왔다. 집에서 맥주 캔을 따며 중얼거렸다. 지겹다, 이놈의 중간고사 같은 인생. 언제까지 이렇게 시험치는 기분으로 살아야 하나.  



망하려야 망할 수도 없는 


강의를 마친 뒤에는 밀린 기사에 피드백 메일만 하며 살았다. 컴퓨터와 혼연일체가 되어 눈이 빠져라 일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보내온 글의 완성도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알고 보니 편집장인 내가 피드백을 못하고 있는 사이, 보조 강사 분들이 나서서 글을 고쳤다고 한다.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마도 K가 중간에 나서서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으리라. 급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여름다운 쨍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장장 54일에 걸친 역대급 장마가 끝난 뒤였다.


K와 함께해온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던 날, 줌 회의에서 나는 모두를 향해 말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사뭇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누가 보면 하버드대학 졸업 연설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올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K를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요. K는 자기가 이 프로젝트를 망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어요. 경험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말했어요. ‘망하려야 망할 수도 없다. 파트너들이 일을 잘하니까 그냥 믿고 따라오면 된다.’라고요. 사실 그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저도 새로운 경험 앞에서는 두려워하는 사람이거든요.


K와 저는 뒤에서 옥신각신한 적도 있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중간에 크게 펑크를 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결국 여기까지 왔어요. 보조 강사 분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요. 제가 내뱉은 말을 믿게 해줘서 고마워요.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이 프로젝트를 뒷바라지해온 K에게 박수 한번 쳐주세요. 망하려야 망할 수도 없지요,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말이에요.”


K의 눈이 빨개졌다. 어디서 저런 거울 같은 인간이 나타나서 나를 열 받게 하고, 군말 없이 이해해주고,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내 세계관에 균열까지 내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올해, K는 다른 사업을 맡았다. 새로운 팀원들 앞에서 그는 멘탈이 튼튼한 사람인 척 굴며, 또 피곤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작작 좀 해….) 나도 올해는 외주와 작별하고 내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설레고 기대되고 두렵고 불안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알지 못하는 세계로 각자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이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이 글을 남긴다.


* 잘못된 명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나는 혼자다. 

실패는 곧 죽음이다.


* 참인 명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손을 내밀면 잡아줄 사람이 있다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비오는 여름, 혼자 집에서 일만 하다가 공황발작이 찾아왔던 그 지긋지긋한 계절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구덩이에 빠질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저 명제를 기억해야겠다. 혼자라고 생각하면 혼자가 될 것이다. 함께라고 생각하면 누군가가 함께해줄 것이다. K처럼 나를 닮은 못난이를 발견한다면, 내가 먼저 기꺼이 손을 내밀리라. 누가 아는가. 그러다 언젠가 로켓과 그루트처럼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영혼의 단짝을 만나게 될는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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