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작업 일지(1) 불안이 불안을 만났을 때
나 : 저 불안해 미치겠어요. 밤에 잠이 안 와요.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다 못 마칠 것 같아요. 이것도 저것도 다 망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에요.
상담사 : 그만 둬요. 지금 당장 전화해서 못하겠다고 말해요.
나 : 네? 그럼 제 생계는 어떻게 하고요? 이렇게 갑자기 못하겠다고 말하면, 대타도 못 구해요. 그러다 앞으로 이 바닥에 책임감 없는 인간으로 소문나서 일 끊기면 어떻게 하라고요?
상담사 : 은화 씨는 망해봐야 해요. 망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나 : 망하라니요? 망하라니요! 남의 인생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안 망하려고 이렇게 기를 쓰고 있는데!
상담사 :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예요. 자기를 그렇게 밀어붙이는 게! 못 믿겠으면 이 책을 봐 봐요. ‘창조적 절망’*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설명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 아…. 그래도 저는 못해요.
상담사 : 그러다 진짜 공황발작 와요! 한 번 오면 계속 온다고요. 지금 멈춰요.
나 : ……생각해볼게요.
*창조적 절망(creative hopelessness) :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소용없음을 체험함으로써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
못난이들이 모여 세상을 구하는 서사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좀도둑, 거구의 백치 파이터, 유전자 변형실험 중 실수로 태어난 너구리,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아이 엠 그루트”밖에 없는 나무(무려 나무!)가 팀을 이뤄 우주 최강의 악당 타노스와 맞붙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혼자서는 별 볼 일 없는 나약한 존재지만, 여럿이 힘을 합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앞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런 세계에서는 나도, 나와 꼭 맞는 오합지졸들을 만나면 상상도 못한 모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현실세계에서는 방구석에 누워 이런저런 공상과 걱정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때가 훨씬 많지만.
나는 프리랜서다. 출판 편집을 비롯해 글과 관련한 각종 외주 작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구술생애사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 일과 저 일을 동시에 하는 프리랜서로 살아온 지 7년차이건만, 아직도 이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프리랜서는 기업가처럼 유능하게 움직여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업을 하고, 일을 따오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이고, 수습해야 한다. 내가 나의 상사이고, 사장이며, 관리자다. 시간 관리를 잘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게으르고, 수동적이고, 일을 미루기 일쑤인 내가 이 역할을 잘해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회사 밖 인간으로 7년째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때그때 기댈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나와 최악의 상성을 자랑하던 동료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못난이도 못난이 나름
나는 청년 관련 기관에서 외주로 교육 업무를 3년째 해오고 있다. 나를 관리하는 담당자들은 신기할 정도로 일을 잘했다. 특히 전년도 담당자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척척 처리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일정 관리에 능하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며 감정적으로도 동요하는 법이 없었다. 반면 나는 최선을 다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널뛰기를 하며 마감 시간에 늦기 일쑤였다. 담당자는 내게 신경안정제 같은 역할을 해주었고, 우리는 썩 괜찮은 조합이었다.
K는 이전 담당자와 확실히 달랐다. 전임자는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내면에 집채만 한 파도를 숨긴 사람 같았다. 그는 초조해보였다. ‘일잘’로 소문난 전임자의 그림자 때문이었을까.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린 듯했다. 업무용 미소로도 가리지 못하는 불안이 미세하게 새어나왔다. 미팅을 끝내고 일어서며 그는 연신 잘 부탁한다고 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린다며 정중하게 응대했지만 속으로는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몇 번 만나보니 K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성취 욕구가 높은 사람은 자기 능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봐 늘 두려워한다. 비교 대상을 놓고 자기를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자신에게 엄격해서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 새로운 일 앞에서는 과도하게 긴장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스스로 에너지를 갉아먹기 십상이다. 그러다 정작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에 방전돼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궁예도 아니고, 사람을 한번 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동족은 동족을 알아보는 법,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K가 내뱉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K가 싫었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내 불안을 자극하는 사람이었다.
못난이도 못난이 나름이다. 서로 장단점이 달라야 보완이 가능한데 우리는 너무 비슷한 모양의 못난이였다. 불안과 불안이 만났으니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흔들릴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올해는 순탄치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별 문제가 아닌데 계획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담당자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그는 상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통제하고 싶어 했다. 본격적인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작정하고 얘기를 꺼냈다.
"K씨, 왜 이렇게 불안해해요. 이 사업은 망하려야 망할 수도 없어요. 이 사업을 함께해온 파트너들이 있잖아요. 제가 몇 년째 그분들을 봐와서 아는데, 믿고 의지해도 괜찮은 분들이에요. 문제가 생기면 얘기하고, 모르면 물어보세요. 혹여나 K씨가 좀 실수하더라도 큰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불안을 좀 내려놔요.”
그는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이었다. 뭘 어떻게 알아, 내 거울이 지금 여기 앞에 앉아 있는데…. 이런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았다. 이왕 요청도 하지 않은 조언을 했으니, 그날 나는 꼰대 같은 태도를 끝까지 유지했다. 선심을 베풀어 인생의 한 조각 진실을 나누어주겠다는 듯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편이라
몇 달 뒤,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교육 현장에서 K는 강의를 서포트해주는 업무를 맡았다. 코로나 시국에 열렸으니 오는 사람마다 온도를 재고, 다과를 준비하고, 와이파이가 제때 터지는지, 계획한 시간에 맞춰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지 일정을 체크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업무였다.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일도 많다 보니, K씨가 조금씩 놓치는 것들이 생겼다. 그게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였다. 나는 3년차이고 그는 처음 맡는 사업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편이라, 자잘한 구멍들은 내가 메우기도 했다. 강의를 하러 왔지만, 현장 스텝의 일도 필요하면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계약된 범위 밖의 일을 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의 장점은, 딱 해야 할 부분만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그만큼 받는 대가가 적다. 그러나 내 몸은 점점 정규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방귀가 잦으면 똥 싼다고, 이런저런 구멍을 막기 위해 종종 거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강의를 할 때도 K가 현장 통제를 해주지 않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1인 2역을 해야 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강의를 시작했는데도 참여자들은 돌아다니고, 분위기가 영 어수선해서 강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K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의 일들에 대해 따져 물었다. 지금까지 모아온 근거를 들이밀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었다. 보통 일하는 사이에서는 감정을 섞지 않고 드라이하게 말하는 게 불문율인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서러움과 분노 같은 게 눈덩이처럼 데굴데굴 부풀어올라 말투에 그대로 묻어났다. 내가 강사로서 무슨 대단한 대접을 받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환대와 서포트를 해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고 언성을 높였다.
K도 만만치 않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뿔이 났는지 격양된 어조로 항변했다. 이런저런 문제는 인정하지만 자기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며 변명하며 화를 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정을 이해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시야를 넓혀야지 자기 일에만 몰두해 있는 게 말이 되냐, 반박의 말들을 쏟아내는 사이 통화는 감정 싸움으로 치달았다. 언성을 높이다가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나는 외롭다고요! 도대체 누구를 보고 일하냐고요!
엇? 이 말이 갑자기 왜 나왔지? 나도 당황하고, 그도 당황한 듯했다. 수화기 너머 정적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에 얼굴이 벌개지려는 찰나, K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사실 저도 그래요. 혼자 일하는 것 같아서 힘들더라고요.
그랬다. 우리는 같은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불안하니까 각자 눈앞에 보이는 일을 닥치는 대로 처리하긴 하는데, 서로 공유를 안 하니까 협업하는 관계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입 꾹 닫고 일만 하기는 K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가 한 일도 생색 낼 만큼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선의로 한 일을 그가 몰라주고, 정작 내가 필요로 할 때 나를 안 챙겨주니 그게 서운했던 것이다.
시야를 넓히라는 말은, 곧 나를 봐달라는 얘기였다. 니가 흘리고 다닌 것들을 주우러 다니는 나, 자잘한 실수가 쌓여 큰 사건이 될까 봐 뒤에서 전전긍긍하는 나, 너의 업무 파트너로서 불안과 책임을 나눠가진 나…. 나는 내 불안과 일에 도취되어 남이 무엇을 하는지는 정작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K의 입장에서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억울했으리라.
쌓인 감정을 드러내고 나니 상황이 명쾌하게 보였다. 시야를 넓히라는 추상적인 주문 대신, K가 좀 더 해줬으면 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업무 분장을 구체적으로 다시 했다. 이후로 K와는 소소한 것도 의논해가며 손발을 맞춰나갔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파트너를 믿으라니 어쩌라니, 일 좀 제대로 하라느니 그런 말을 해댔던 사람으로서 체면을 지킬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내 바람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진짜 구멍은 나였다. 몇 달 뒤 공황발작이 찾아올 줄 알았더라면 결코 그런 말을 내뱉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공황발작 5초 전_프리랜서의 작업일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