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되로 되는 일은 없을지라도, 하쿠나마타타!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떤 슬픔이 어떤 기쁨을 불러올지,
어떤 우연이 또 다른 우연으로 이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 어는 순간에는
모든 게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중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사람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산을 좋아하는 인자한 사람, 바다를 좋아하는 지혜로운 사람. 나는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다.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울창한 나무들 틈에서 깊이 숨 쉴 때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나도 이 나무들처럼 한 곳에 뿌리 내린 채 벗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숲에 있다 보면 바다가 그리워진다.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길을 떠나 있다. 안식, 안정 그런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나는 물을 두려워한다. 수영장에서도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 가면 빠져죽을 것 같다. 그럼에도 바다가 좋다. 잔잔한 바다도 좋지만 성난 바다는 더욱 좋다. 먼 데서 불어온 바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삶도 죽음도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나는 삶에서 목적지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홀로 노를 저어왔다. 강렬한 햇빛에 소금 목욕을 해도, 비바람에 몸이 날아갈 것 같아도 계속 노를 저었다. 힘들어도 원하는 걸 얻으려면 무작정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러다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거센 파도에 좌초된 적도 여러 번이다.
이제는 어깨에 힘을 빼고 싶다. 내 구미에 맞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무작정 파도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두둥실 떠가고 싶다. 산에 있어야 편한 사람이 바다를 좇으니 그 간극에서 오는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불안이 없으면 스릴 넘치는 모험도 없다. 그러니 불안을 껴안아 받아들이는 수밖에. 괴테는 말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러자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나무로 만든 배였는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지만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는 파도에 몸을 싣고 싶다.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즐거울 것이다.
불안하기에 오늘도 용기를 내본다. 언젠가는 나도 불안을 파도처럼 타고 달리는 서퍼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