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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화 Jun 02. 2021

정신과 문턱을 넘어보니

내가 공황장애라니?!

강의를 앞두고 호흡곤란이 찾아왔을 때, 나는 정신과에도 찾아갔다. 그때까지 만나온 상담사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공황장애가 시작될 거라고 경고했다. 그 말이 현실이 될까봐 두려웠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호흡곤란, 죽을 것 같은 느낌은 모두 공황장애에 해당하는 증상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상담소를 다녀온 다음날, 나는 정신의학과로 향했다.


목요일 저녁, 미리 예약해둔 정신과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자가 되어 나올 것만 같았다. ‘별일 없을 거야, 공황장애인지 아닌지 그것만 확인하면 돼.’ 나는 나를 달래며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철컥, 하고 문이 열리기까지 그 짧은 순간이 내 운명을 가르는 것만 같았다.


진료실은 카페 같았다. 따스한 느낌의 벽에, 전면으로는 통창이 나 있다. 내가 앉을 쇼파에는 담요와 쿠션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남자 의사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운을 걸치지 않은, 캐주얼한 복장이다. 마치 미드에서나 나올 법한, 안락하고 개방적인 분위기의 공간이다. 여기서는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할 것 같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정신 차리자. 이곳은 병원이고, 나는 진단을 받으러 왔다. 저 사람은 처음 보는 ‘의사’인 데다 ‘남자’다. 부지불식간에 나를 여러 요소로 쪼개 판단할 수 있으므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나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전문가로서, 그간의 맥락과 생각과 느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의사에게 들려주었다. 그건 흡사 미팅에 나선 직장인, 아니 결정적인 용역을 앞두고 경쟁사와 PT를 하는 홍보인의 자세와 닮아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절실하다. 나는 ‘정상’이라는 걸 확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공황장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정신의학과를 찾아간 것이다. 집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치매(인지장애)인 게 확실한데 의사 앞에만 가면 너무나도 멀쩡하게 대답해서 자식을 복장 터지게 만든다는, 그런 노인의 기분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늙으나 젊으나 환자가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징징대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말하다 보니 눈물이 조금 났다. 호흡곤란이 왔던 그날 밤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조용히 듣던 의사는 말했다.


“공황발작이 왔던 것 같네요. 발작은 ‘어택(attack)’이라고 해서 일회성으로 그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필요하시면 약을 좀 지어드릴까요?”


순간 겁이 났다. 불안에 질식사 할 것 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왔을 때 내 옆에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맞다,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 수밖에 없단 말인가? 약을 먹는 순간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공황장애 환자가 될 것만 같았다. 차마 이 말은 하지 못하고, 약의 부작용에 대해 물었다. 의사가 조곤조곤 답했다.  


“불안은 적정 수준으로 기능하면 생존에 도움을 주지만, 과도한 경우에는 수행을 해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지장을 줍니다. 이 약은 불안을 적정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도움을 줄 거예요. 사람마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정 걱정되면 그냥 가지고 있으세요. 그러다가 너무 불안하다 싶으면 그때 드셔도 됩니다.”


그는 단 몇 마디로 불안을 정의하고, 약의 기능과 함께 복용법도 설명해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합리적인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도 마음이 놓였다. 여차하면 우황청심환처럼 털어 넣으면 된다는 거 아닌가. 이어서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공황장애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입니다. 들어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요.”    


결국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 말을 듣고야 말았다. 내가 공황장애라니! 그런데 극복할 수 있다고? 이 엄청난 말들 앞에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날 나는 병명도 얻고 처방전도 얻었다는 사실이다. 약 봉투를 들고 털레털레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체념 반, 부정하는 마음 반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당연히 책을 폈다. 책을 믿는 사람은 이럴 때 책에서 길을 찾는다. 마침 우리 집에는 꼭 맞는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오늘의 나를 위함이었는지, 과거의 나는 이 책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더랬다. 포스트잇에서 나를 구원해줄 문장을 발견했다.  




“불안과 불안 관련 장애는 오늘날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분류된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흔하다.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보다도 더 많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인 4000만 명 정도, 그러니까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은 현재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미국에서 정신건강 관리에 사용되는 비용의 31퍼센트가 이 병 치료에 들어간다.”


7명 중 1명이면 전체 인구의 14퍼센트가 앓고 있다는 건데, 이 정도면 굉장히 흔한 질병이다. 내가 별로 운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그 14퍼센트에 들어간다고 해도 크게 억울할 것 같지는 않다.(여전히 못 받아들인 상태라 가정법을 썼다.) 나와 같은 종류의 불행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다고 생각하면 덜 외롭다. 저자는 다음 문장에서 바로 뒤통수를 후려친다.


“(중략) 정말로 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나온 학술 논문에서 불안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의 심리적, 육체적 장애는 당뇨병이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체로 관리 가능하지만 때로는 치명적이기도 하고 치료가 매우 힘들다는 점에서 당뇨병과 비교할 만하다는 말이다.”


당뇨병? 평생 식이조절을 해야 하고, 관리에 소홀할 경우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그 치명적인 병 말인가? 불안장애가 그렇게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라니, 진료실에서 내가 들었던 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너무 멀쩡한 척했던 걸까? 복잡한 심정으로 책을 넘어갔다.


“1950년대에 항불안제 사용이 급증했을 때 일부 정신의학자들은 불안이 지나치게 줄어들 경우의 위험을 경고했다. '모든 사람들이 억지로 맥이 풀린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


이 대목에 심히 동의하는 바다. 나는 차마 약을 복용하지 못했다. 불안이 줄어들면 강의 준비를 미처 끝내지 못한 상태로 졸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한번 긴장의 끈을 놓으면 어마어마한 졸음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불안을 떠나기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오는 동안 아무도 내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이 나에게 높은 기대를 건다. 목표를 주고, 평가하고, 비교하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렇게 노력해서 한 발 한 발 내가 원하는 미래를 향해 걸어왔다. 불안은 그 과정에 만난, 필연적인 동반자다. 불안을 떨쳐내려면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그럴 수는 없다. 아마 죽는 그날까지 욕심을 부릴 것이다. 나도 별 수 없이 불안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약이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위태로운 순간에 나를 지켜줄 방패가 있다는 뜻이니까.


가방에 약을 챙겨 강의실에 들어갔다.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무사히 강의를 마치고 나왔다. 그 유명한(우울증,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다 안다는 그 약) 자낙스*와 렉사프로**는, ‘너무 너무 불안할 때 먹는 약!’이라는 귀여운 메모를 달고 지금도 약통에 고이 모셔져 있다.   




*자낙스 : 불안, 우울, 긴장, 수면장애 등의 증상완화에 사용되는 항불안제.

**렉사프로 : 신경전달물질을 조정해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등을 치료하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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