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코드 F41.9로 인해 얻은 것들
위안이 되는 사실은
이제 내가 정신병을 그냥 여러 병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거야.
-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불안장애’라는 믿음직한 딱지
질병코드 F419.
정신과에서 받은 진료확인서에 적힌 정체 모를 번호를 검색해보니 ‘상세불명의 불안장애’라는 진단명이 떴다. 의사로부터 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뒤에도 부정하고 싶었던 정신질환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이 질병코드는 나의 정신 상태를 알려주는 공식적인 좌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의사도 알고, 국가도 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공단이 인정한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신과에 다니는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나처럼 질병코드가 뜨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검사비를 비롯해 진료비, 약제비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심리 검사 - 인지평가, 벤더도형검사, 해밀톤 불안검사, 다면적 인성검사(MMPI-2)와 기질 및 성격 검사(TCI), 문장 완성 검사, HTP 검사-에 대해 내가 병원에 지불한 금액은 8만 원가량이다. 약값으로는 1만 원이 들었다. 상담비로는 1만 8천 원을 냈다. 이마저도 실비 보험으로 처리하면 실제로 내가 부담하는 상담비는 1만 원으로 줄어든다.
40분 상담에 1만 원이라니! 헬스장에서 PT를 받아도 시간당 최소 5만 원은 줘야 하는데, 정신과의사한테 상담받는 비용이 이토록 저렴하다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꼭 받아야 한다. 평생 시달려온 불안이 이제는 공황발작으로, 자칫하면 공황장애로 이어질 정도로 커졌다. 나는 약을 먹지 않고 상담만으로 불안장애를 관리해보기로 했다.
상담 받으면 정말 좋아지냐고?
본격적으로 개인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격주에 한 번, 월요일 오전 11시에 정신과를 방문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묻는다. “상담 받으면 정말 좋아져?” 글쎄, 상담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점괘도 아니다. 심지어 타로카드만큼도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다만 상담을 받다 보면 내 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해 혼자 탐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 스스로 코멘트를 하다 보면 내가 만든 오류에 빠져 부정적인 결론으로 끝나기 일쑤다. 여기서 벗어나 내가 갖는 사고 체계가 타당한지, 어떤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이에 대해 질문하고 들어주고 공감하고 고민해줄 외부의 조력자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람이 바로 정신과의사이고 상담사다.
상담에서는 2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보고한다. 먼저 수면, 휴식, 식사 등의 기본적인 생활과 일의 균형에 대해 다룬다. 나는 일이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으면 수면 패턴부터 망가지는 경향이 있다. 불안하면 새벽까지 일하다가 잠자리에 눕는다. 미처 풀지 못한 스트레스는 악몽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깊게 잠들지 못한 탓에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나질 못한다. 오후에 비몽사몽 눈을 뜨면 벌써 하루를 망친 느낌이 든다. 그러면 또 시간을 뭉개며 어기적거리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에 착수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늦게 일하는 악순환이다. 그러면 식사도 대충 거르기 십상이고, 주말에도 밀린 일들을 하느라 온전히 쉬지 못한다.
일이 잘돼도 문제다. 나는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계속 달리려는 경향이 있다. 체력의 80퍼센트만 쓰고 20퍼센트는 나를 돌보기 위해 남겨둬야 하는데, 일에만 120퍼센트를 불살라버리고 다음날에는 연료가 없어 퍼져버린다. 마치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불살라버리는 것이다. 20대에는 사흘 밤낮을 지세며 과제 위주로 사는 삶도 견딜 만했다. 성취감이 피로감을 이겼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선 뒤로는 하루만 잠을 못 자도 컨디션이 훅 떨어진다. 이렇게 무리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필시 몸 어딘가가 고장 난다. 시력이 저하되고 허리나 목에 디스크가 오며, 어깨에는 석회가, 손목에는 터널증후군이 생긴다. 이 신호마저 무시하면? 그때는 번아웃을 지나 공황이 찾아오는 것이다.
상담을 받는 동안에도 여러 번 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그 상태를 알아차리고 불안이 넘쳐흐르는 것을 막고 있다. 상담은 통해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아차리게 도와준다. 내가 과속 패달을 밝고 달리려고 들면 의사는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면 불안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슬며시 일러준다. 의사는 한 발 뒤에서 나의 말을 주우며 따라온다. 내 감정을 알아주고 이름을 붙여준다. 그의 입을 통해 나를 들여다본다. 일에 매몰되어 혼자 누에고치처럼 꽁꽁 싸매고 들어가려 하면 이런 말을 해준다. “일이 많아서 불안할 때는 혼자서 모든 걸 다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군요.”
그렇게 내 상황을 환기시켜주면 잊고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친구, 가족, 동료 들이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좀 도와 달라고 해보면 어때요?” 그 한마디가 나를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숨 쉬게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지금 나의 불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과연 절체절명의 코너에 몰려 있는 것인지. 덕분에 지난 2년간 공황발작이 재발한 적은 없었다.
질문 하나에 15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상담의 또 다른 기능은 나라는 인간의 본질을 직시하는 데 유용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토록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원인을 파고 내려가다 보면 과거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공황발작이 왔던 순간을 예로 들어보자. 강의 자료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일과 겹쳐 샌드위치 신세가 된 나는 새벽까지 일에 시달리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때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위로하는 남편을 향해 나는 이런 말을 했더랬다.
“거짓말, 아무도 날 안 도와줄 거잖아!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야. 다들 자기 먹고사는 거밖에 관심 없어. 그때 엄마 이혼했을 때도, 내가 대학갈 때도, 아무도 안 도와줬잖아! 내가 다 알아!”
15년도 더 된 이야기를 현실의 근거로 내세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것은 나의 불안을 구성하는 핵심 에피소드다. 의사에게 이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아무도 안 도와줬다고 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이 질문 하나에, 마치 어제 일처럼 15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가난을 혼자 이고지고 다녀야 했던 시절, 엄마에게도 십 원 한 장 받아보지 못하고 생활비와 등록금을 내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그때로 나는 돌아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수능 준비를 하며 외로움과 두려움에 맞서야 했던 열여덟의 나, 시험 문제 하나를 틀리면 장학금을 못 받고, 장학금을 못 받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절벽 앞에 선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뜬눈으로 지새우던 스물한 살의 나…. 아무도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없어 지독한 자기 연민으로 버텼던 그 시절을 떠올리니 눈물이 후드득 쏟아져내렸다.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가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힘들었겠어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었군요. 트라우마가 되고도 남을 일이에요.” 그 말이 왜 그토록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감정은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남이 그 감정을 알아줄 때 응어리진 것들이 비로소 풀려나오는 것 같다. 그래, 나는 힘들어 마땅했던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불안에 떨었던 거야. 고통을 승인받고 싶었던 걸까, 나는. 힘들었겠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 싶었나 보다. 나는 이때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털어놓았다. 정말로 괜찮아질 때까지 말하고 또 말했다. 그리고 의사는 처음 듣는 것처럼 늘 귀기울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상담이라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과거의 나와 새롭게 만나는 중이다. 상담을 하고 글을 쓰며,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가 그때 듣고 싶었던 말을 스스로에게 해준다. <금쪽 상담소>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해주었던 것처럼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담당 의사가 오은영 박사님처럼 모든 빈칸을 속속들이 채워주지 못하지만 괜찮다. 나를 다독이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필요할 때는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된다.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아이였던 나를 다정하게 돌봐줄 수 있다. 그렇게 길어올린 기억의 조각들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안장애면 어떠한가, 그것도 병명의 하나일 따름인데.
정신과에 가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병명을 얻으면 편해진다고, 건강보험 처리가 돼서 상담비도, 약값도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결국 당신은 머지 않아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