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네치카 Jan 31. 2021

겨울 연가를 알만한 나이   

겨울, 내 마음의 추위도 다 내 것이니까 꼬옥 안아줄 것이다.

  나는 손이 차다. 무심코 내 손을 잡은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손이 왜 이렇게 차냐고, 그러면 웃으면서 기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는 대답한다. 하나는 " 내 맘이 차가운가 보지, 차가운 사람이라 그래" 혹은 " 원래 맘이 따뜻한 사람이 손은 무지 차"라고 말이다. 이렇게 차가운 손 때문에 나는 온도가 떨어지고, 바람이 강해지는 계절 초입에 들어서면 긴장한다. 장갑과 핫팩이 없으면 나기 어려운 계절이 나에게 "겨울"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하와이에 태어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나만 이런 건 아닌 것 같다. 추위, 바람, 길어지는 밤 등 겨울의 기본값은 인간이 생존하기에 좀 더 어려운 조건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겨울은 4계절 중 봄을 만나기 위한 시련의 나날들로 극복하고 견뎌내야 하는 시기로 자주 표현된다. 그래서 나도 은연중 매년 겨울 바라곤 했었다. 패딩 말고 예쁜 코트를 입고 다닐 수 있는 좀 너그러운 겨울이기를, 겨울이 아닌 것처럼 이번 겨울이 지나가기를 하고 말이다. 이런 생각에 자그마하게나 균열이 간 건, 러시아 린마 교수님 의 걱정 어린 이야기에서였다. 내가 겪은 겨울의 러시아는 나에게 너무 춥고 혹독했다. 스타킹을 신고 항상 청바지를 입었다. 모자는 필수였고, 길거리를 걷다 추위로 머리가 아파 다음 블록까지 걷지 못하고 바로 옆 상점에 들어가 몸을 녹이던 추위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선생님은 요즘 너무 따뜻해져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예전 러시아는 정말 추웠다고 북극곰은 어떻게 사냐며 걱정하시는 말에 아 북극곰 입장은 그렇겠구나 싶었다. 추워야지 사는 존재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겨울이 겨울 같아야지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콜라는 기호식품일 뿐이다. 북극곰에게는 추위와 빙하가 필요하다.

 사실, 추위가 싫어서 그렇지 겨울과 나의 접점은 꽤 있다. 나는 무려 겨울에 태어났다.(그래서 나는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이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좋아한다.) 겨울에는 내 생일이 있고, 일 년에 한 번 전 세계 모든 지구인이 착해진다는 크리스마스도 있다. 새하얀 눈이 오는 정경은, 다음날 출근길의 사투는 망각하고, 매번 나를 행복하게 한다. 추위는 싫지만, 춥고 겨울이 긴 러시아 관련 전공을 하고, 손이 시려 스키장은 잘 못 가지만, 스키를 잘 타는 사람들은 동경한다. 드라마 마니아인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겨울연가도 있다. 내가 학창 시절에 한 드라마인데, 바람머리 파마하기 전 고딩 때 배용준이 어린 마음에도 멋있었던 기억이 난다. 극 중 두 배우가 유치하게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눈 사람을 만드는 장면, 엇갈리고 흔들리는 감정들이 새하얀 설원과 내리는 눈으로 낭만성이 극대화 됐었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윤석호 PD님 특유의 감수성과 비극을 좋아하는데, "겨울" 이 주는 배경 때문이랄까 시리즈 중에 아릿한 감정이 제일 잘 묻어나서 좋아한다. 따뜻한 햇살 맞으며 하는 산책도, 내뱉는 내 숨마저 무더운 여름에 바다여행도 좋아하지만, 추운 겨울날 따뜻한 전기요에 앉아 가족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귤 까먹는 아늑함도 좋아한다. 그리고 어둠의 긴 밤은, 외로움이고 고독일 수 있지만 그래서 내 심연에 집중할 수 있고, 깊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 나는 종종 러시아가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해낸 데에는, 긴 겨울이 한몫한 것이 아닐까 싶다는 나만의 추측을 한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그중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를 보고, 어쩐지 사계절로 치면 "겨울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 속에서 "슬픔이"는 초반 부정적 감정으로 묘사되지만, 영화 끝에 가서는 "슬픔"이 소중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생에 항상 "기쁨"만이 가득 찰 수 없고, 항상 기쁠 수 있다면, 그게 과연 "기쁨"으로 느껴질까? 춥고, 바람 부는 겨울 우리는 내 몸의 온도만큼, 내 마음의 온도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와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충실하고 집중할 시간 말이다. 간혹 내리는 눈은 우리 마음을 더 말랑말랑하게 하며, 날카로운 전 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때로는 너무 춥고 매섭지만, 이 추위가 생존에 필요한 존재들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고 만나는 봄은 얼마나 따스하게 느껴지고 반가울 것인가! ‘인사이드 아웃’ 마지막 즈음에 기쁨이가, 슬픔이를 꽈악 안아주는 장면이 있다. 나도 이제 겨울을, 내 마음의 추위도 다 내 것이니까 꼬옥 안아주기로 한다. 내 인생의 소중한 하나의 동반자이다. 핫팩은 쿠팡에서 쟁이고, 장갑은 자주 짝짝이로 잃어버리니 예쁜 가죽 장갑 하나, 막 끼고 다닐 장갑만 든든히 준비해 놓으면 될 뿐이다.

기쁨만큼 슬픔도 소중하다.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겨울은 겨울대로 의미가 있다.


 내 마음은, 내 손처럼 어느 나날에는 차갑고, 또 어느 나날에는 내 손과 달리 장작 때는 아랫목처럼 펄펄 끓을 것이다. 모든 나날들에는 모두 저마다의 의미와 때가 있다. 왠 추운 겨울에 유치하게 남이섬까지 가서 눈사람이나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요즘 감성으로는 눈집게로 오리나 하트를 만들것이다.) 헤어지네 마네 눈물 바람을 짓는지, 그럼에도 나의 지나온 나날과, 그 사람의 순탄치 않았던 지난날들까지도 사랑하겠다고 하는 겨울 연가를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Ps. 그럼,, 사실 충분히 차고 넘치니 문제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 댄스가 하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