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작은 이야기>
"저 여기 있는데요" 하고 번쩍 손을 들고 싶지만 어쩐지 수줍은 사람
존재감이 없지만 계속해서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
존재감과 무 존재감을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요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어째서 누군가는 무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존재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는 반면에 또 누군가는 무리에서 그럭저럭 어울리는 편이지만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걸까.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그렇게 고민해서 생각해낸 결론은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존재감이 확실한 그들은 어떤 무리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인지한다. 설령 애초부터 마땅한 자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그 자리를 만들어낸다. 자신 있는 일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어떤 영역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그 영역은 곧 자신임을 드러낸다. 어떤 영역은 곧 '나'가 되고 그 영역을 행하려면 우선 '나'부터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버린다. 말하자면 그 영역만큼 존재감이 명확해진다.
어려운 것 같으면서 사실은 존재감이란 자존감과 동일한 말이 아니었나. 늘 하는 이야기지만 받을 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감정적인 부분이든 그 외의 어떤 부분이든 주는 사람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줄 안다. 잘 받을 줄 알아야 하는 것도 기술적인 부분이다.
"저 여기 있는데요" 하고 내가 말을 꺼내볼까 고민하는 순간에
"저는 이렇게 소중한데요 " 하고 그들은 행동으로 표현한다.
옳고 그름으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다만 존재감이 독보적이었던 어떤 이를 보며 문득 고민에 빠져 글로 써보고 싶었다. 건조한 사람은 나였다. 존재하지 않은 듯 존재하는 나와 극명하게 비교가 되는 어떤 이를 보며 새삼스레 "아, 나는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 생각하다가도 "자존심을 이런 식으로 갉아먹을 순 없어" 고민하다가 또 "근데, 이게 나였지" 하고 타협하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존재감이 명확할 필요도 없다. 다만 막 해도 되는 사람으로만 남지 않는 다면 그렇게까지 실패한 방식은 아니라고... 미안하지만 역시 이런 것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