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불러낸 계절

by 정문향

혼자 지내는 것이 낯설던 시절을 지나 누구보다 혼자의 시간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남겨진 고요함이 편안하다. 인위적인 소리가 사라진 정적이 좋다.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누군가 나의 삶에 관여하는 얽히고 얽힌 관계를 벗어난 심플함이 제법 마음에 든다. 우리는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 경쟁대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촘촘하고도 답답한 시간들을 살고 있다. 분명 어떤 것들을 쫓고 있는데 실체가 없고 목적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공허한 지 오래다. 모두가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권유한다. 잘 살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가는 동안은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수록 최선을 다해 극한의 불안감에 다아갔다.


바쁘게 살고 빈틈없이 일상을 채워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공허함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했고 조급한 마음을 놓아주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낡은 시선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지친 마음은 맑고 깨끗한 기운으로 가꾸고 싶었다. 빈틈없는 생각들로 꽉 채워진 머릿속은 숲 속처럼 고요하게 만들고 싶어서 무작정 걸었다. 어딘가로 가지 않는 길이었지만 삶이 보일 때까지 걸었고 걸어서 계절을 불러냈다. 더 솔직하고 더 적나라하게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아무도 없는 곳이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걷기는 자유롭고 생생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다는 것은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걷기만큼 내적 감정을 모두 끄집어내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는 다른 일이다. 프랑스 작가 쥘리앙 그라크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위대한 풍경은 걸음으로써 소유하게 만드는 일종의 초대다. 풍경이 전하는 열정이란 여정에 대한 취기다" 고요하고 아름답고 차분한 나의 풍경은 걸어서 소유한 나의 숲이자 삶이다. 걸으며 만났던 사람, 마주친 풍경, 몸으로 느꼈던 모든 것들은 각각 다른 형태로 기억되어 마음을 치유해준다. 시간이 지나도 그저 멈추지 않고 걸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언제든, 마음이 소란해지고 많은 것들로 상처를 받을 때마다 걸어서 계절을 불러내어 속도가 빠른 삶에 여유를 찾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