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를 시도했었다. 엄청난 심리묘사들이 나를 집어삼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문장들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반대로 술술 읽히는 편이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처참하고 힘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정도로 두려웠고 감히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거웠다. 그리고 고작 100페이지에서 멈추고 책을 덮어버렸다. 몇 년이 지나고 포기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분명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심리묘사가 불편하고 견디기 힘들어서 포기했었는데 이상하게 한발 물러서서 바라봐지는 게 신기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인간의 성장은 고작 그 정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언젠가 포기했던 책을 또 언젠 가는 수월하게 읽어내는 순간, 두려움에 한발 물러서서 포기했던 그때의 자신이 시시해지는 순간, 고작 그 정도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그래서 말인데, 그동안 나는 죄와 벌을 읽을 만큼 성장했어"라고 말하는 건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할까 하는 찰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죄와 벌을 읽을 만큼의 성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성장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나도 명확이 무엇이라 정의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모르긴 몰라도 분명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조금씩 좋게 바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성장을 위해 살아가지 나빠지기 위해 살진 않으니까. 성장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한 것을 탓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작고 소소하고 얕은 성장을 내뱉기가 어렵고 부끄러웠던 거야.
"성장이 고작 일 순 있는 거잖아요. 성장이 꼭 거창해야 하나요? "
불쑥불쑥 어딘가에게 누군가에게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 합리화를 하지 못하고 그 화살은 언제나 나에게로 향했다. 고작 그 정도가 성장이라고 한다면 성장이 너무 시시하지 않을까. 그렇치만 고작 그 정도의 시시한 성장이 차곡차곡 쌓여서 성숙한 존재로 이끌어주니 조금 환대하듯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한 성장이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게 적극적으로 환대하는 것, 나는 고작 그 정도도 성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더 크게 말하는 것이다. 용기 따위도 필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