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냥이 Oct 19. 2023

MBTI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가 답하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부쩍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은 이가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며칠 전 회사 면접에서 채용 담당자가 구직자의 MBTI를 묻더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MBTI를 궁금해하는  단시간에 상대방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가늠해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lNFJ? 내향적이고 직관적인 성향인가? 이런 식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이나 MBTI와 같이 인간을 카테고리화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 먹고 사느라 바빠 타인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탐색할만한 시간과 여유가 부족한 탓. 타고난 피와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즉각 나오는 검사 결과로 인간을 파악할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무척 놀라운 일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수천 년 전의 인문학자들은 MBTI를 보고서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평생을 바쳐 공부해도 알지 못한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이렇게 쉽게 풀 수 있다니.


만약 인문학의 대표주자 톨스토이는 MBTI를 봤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이 사람들아, 인간이 그리 납작한 줄 알아. 그의 말을 옮겨본다.


"저 사람은 악할 때보다는 선할 때가 많다든지, 게으를 때보다는 부지런할 때가, 어리석을 때보다는 똑똑할 때가 더 많다고, 혹은 그 반대로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누구를 두고 단정적으로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들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구분한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인간은 강물과도 같다. 강물은 언제고 변함없이 흐르지만 어느 곳에서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기도 하다가 다른 곳에서는 넓어지면서도 물살이 느려지기도 한다. 맑은 곳이 있는가 하면 탁한 곳도 있고 차가운 곳이 있는가 하면 따뜻한 곳도 있고 차가운 곳이 있는가 하면 따뜻한 곳도 있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느 인간이건 인간의 모든 특질의 싹을 안에 지니고 있어 어느 때는 이런 특질이 나타나고 어느 때는 저런 특질이 나타나기도 하며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면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변화가 아주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부활』중에서


살다 보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다. 회사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누구보다 나의 해고에 앞장서고, 주변에서 신뢰를 받던 사람이 무책임한 잘못을 저지르고는 일언반구 없이 사라진다.(실제 경험담이다) 실로 어안이 벙벙하지만 어쩌랴.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던 내 탓을 하는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인간이 수시로 출몰한다는 점이다. 보통의 세계관으론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 수상한 인간들이.


그럴 때는 인간이 강물과 같다고 한 톨스토이의 조언을 떠올려 봄이 좋다. 언제고 변함없이 흐르지만 어느 때는 탁하고 어느 때는 맑기도 한 강물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누구보다 외향적이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히키코모리가 되고, 누구보다 수줍음 타는 사람이 수 천명이 모인 무대에서 유창한 연설을 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지적인 사람이 신흥종교에 빠져 전재산을 잃기도 하고, 누구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남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준다.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인간은 이토록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존재다. 그래서 나는 선악이 뚜렷한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총천연색의 인간을 모노톤으로 그리는 작가의 게으름을 봐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소개하고 싶은 영화 한 편이 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 다. 이 영화에는 강간 범죄로 딸을 잃은 한 여성이 나온다. 그녀는 딸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하는 윌로비 서장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로 하여금 죄책감을 심어주겠다는 발상으로 그녀가 세운 세 개의 광고판은 윌로비 서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래도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이제 속 시원하냐는 고인의 아내에게 그러게 범인을 진작에 잡았어야지, 퉁명스럽게 내뱉을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체적 매력, 재력, 그녀 자신도 뭐 하나 빼어난 것이 없어 뵈지만 키 작은 남성의 데이트 신청에는 기겁하여 거절한다. 감히 누굴 넘보냐는 경멸의 시선과 함께. 반면 그녀가 죽음으로 몰고 간 윌러비 서장은 주변 동료들의 신망을 두둑이 얻은 인품 좋은 인물이다. 딸을 잃은 밀드레드가 그를 비난하는 광고판을 세워도 윌러비 서장은 증오로 앙갚음하지 않는다. 그저 범인을 잡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길 뿐. 이쯤 되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한편 윌러비 서장을 믿고 따랐던 딕슨 경찰은 패닉에 빠진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자인 그는 자신이 따랐던 상관이 자살하자 광고판이 게시되도록 허가한 광고 업주를 무참히 폭행한다. 그러나 윌러비 서장이 남긴 애정 어린 편지를 읽고 그는 변화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밀드레드를 돕기로. 그녀를 도와 딸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놈을 내 손으로 죽이기로. 이제 밀드레드는 딕슨이 걱정된다. 당신의 인생을 내 딸의 죽음으로 망쳐도 되는 걸까? 냉혹했던 밀드레드의 마음에 무언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밀드레드의 미소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인간 내면에는 구불구불한 강물이 휘몰아친다. 어떨 때는 차갑고 어떨 때는 따뜻하기도 한. 그러다가도 가차 없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강물이 저마다의 심연에 흐르고 있음을 영화 《쓰리 빌보드》는 말해주고 있다. 이런 영화를 보면 반갑다. MBTI 너머에 있는 인간을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굽이치는 강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스키의 소설을 추천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소설이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데 있다. 나처럼 바쁜(정말?) 현대인은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럴 때는 이런 영화를 찾아보면 좋다. 영화가 약속한 2시간을 투자하여 생각해 보는 거다. 내 안의 강물은 몇 개의 빛깔을 가지고 있을까. 나의 강물은 타인과도 연결된 것일까. 그럼 나의 강물과 타인의 강물이 만나는 지점은 어떤 빛깔을 띄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을.


누군가의 MBTI가 궁금하거든 먼저 소설을 읽어보기. 여의치 않다면 《쓰리 빌보드》같은 영화 보기. 이것이 MBTI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을 이해하고 싶을 때 내가 쓰는 방법이다. 안타깝게도 이 방법은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돌아가는 것 같은 그 길이 제일 빠르다는 것을.

이전 10화 다정함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