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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05. 2023

만약 하루가 하나의 시라면

마른 반복.


어김없이 아침이 오고, 일어나 밥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그렇게 무한 반복 속에 의미도 마르고 고유성도 잃고  생각도 마르고.


조금이라도 이런 하루에 반짝임을 입히고 싶어서

설거지를 하다가 멍하니 생각한다.

'만약, 하루가 하나의 시라면. 나의 하루는 어떻게 써질까.'


부러 설거지하다 그릇통을 휘저으며

시로 쓰일만한 단어를 건져 올린다.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다가도

다른 눈으로 나를 엿본다.


빨래를 널다가도

 만약, 이런 하루도 시로 쓰일 수 있다면,

그 마음에 허리를 곧추세우며 옷가지를 탈탈 턴다.


돌아온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가르치고 타이르고 재우며 마음으로 시를 쓴다. 나의 하루를 채운 행위는 and의 연속으로 end 된다.


만약 하루가 하나의 시라면

이렇게 바짝 마른 반복의 틈으로

마침내 하나의 반짝임을 입힐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의 별스럽지 않고 하찮은 노동도

스스로 귀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시로 적힐 수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24시간에 묻힌

격하게 요동치는 감정과 도무지 솟아오르지 않는 마음을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을지라도

나는 시를 쓰기로 했다.

나의 마른 반복이 반짝이고 싶어서.

일상의 더미에 묻히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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