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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오릉 커피씨 Dec 30. 2023

그깟 커피 한 잔이 뭐라고

커피 생활자의 글

"그깟 커피 한 잔이 뭐라고."


십몇년 전 정치대담프로그램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담 주제를 잡고, 토론자를 찾아 후보군을 만들고, 섭외를 해 날짜를 조율하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토론자들끼리 서로 누가 나오는지 체크가 시작되고, 서로 맞지 않는다 생각하면 내용이나 녹화시간, 토론자 교체 등을 이유로 출연을 고사하기 일쑤입니다. 그때마다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커피 한 잔에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쪽 저쪽 전화를 돌리며 상황을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것 뿐입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그런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커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각 분야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며 뭔가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데. 나는 그깟 커피 한 잔이 뭐라고. 


문득 십년전의 커피가 생각났습니다. 새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녹화나 녹음 한 두 시간 전 출연자가 나올 수 없다고 통보했던 때도, 그래서 당장 그만두어도 이상할 거 없는 작가 생활 내내 함께 했던 커피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커피가 아닌, 커피를 마시며 하는 그 '무언가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커피를 마시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졸음을 쫓고 한숨을 돌리고 감정을 추스리고, 그깟 커피 한 잔을 위해서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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