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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Sep 25. 2022

밤의 정거장과 국수 한 그릇

그냥 음식이 좋아서 쓰는 음식 이야기

 밤의 정거장을 좋아한다.

 그것이 기차역이든 버스터미널이든 간에 정거장은 늘 내 감정을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심리적인 기재로 작용한다.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나 쌍라이트를 밝히는 버스를 보고 있으면 지구 궤도를 도는 커다란 우주정거장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도시를 밝히는 빌딩의 불빛은 우주를 밝히는 별빛처럼 보였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암흑을 마주하면 내가 삶이라는 우주를 여행하는 목적지 없는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머물만한 별에 도착할 수 있을 지, 그리고 이 우주 속에서 결국 영원히 혼자라면 인간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존재일지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내 첫 백일장은 2011년도에 열린 순천대학교 백일장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전날 저녁에 순천에 내려가서 숙소를 잡고 잔 후 아침에 이동했겠지만 그때 나는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래서 새벽 두 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아침에 순천에 도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대전역 2층에서 플랫폼 방향을 바라봤을 때 보이는 어둠 속에서 나는 여행과 삶의 비슷한 점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차에 오르고 새벽 등산을 가는 어른들의 말소리 속에서 선잠을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겨우 백일장 장소에 도착하니 시작 시간도 아슬아슬했고 정신도 없었다. 어수선함 속에서 발표된 글제는 고속도로였는데 글제를 보자마자 혼란스러움이 잦아들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때 마지막 운행을 나온 고속버스 기사를 인터뷰 방식으로 취재하는 플롯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새벽에 역에서 생각했던 문장들이 도시락 반찬을 담듯이 가지런히 글에 담겼고 결국 3등상을 수상했으니 결과도 좋았다. 그렇게 백일장을 마치고 여정의 끝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잔뜩 피곤한 채 대전역으로 돌아와서 먹었던 가락국수의 맛. 새벽부터 시작된 긴 하루로 힘들었던 허기진 뱃속을 따뜻하고 칼칼한 국물로 든든하게 달래주었다. 어쩌면 그토록 공들여 쓴 이야기에서 버스기사의 정거장 속 우주에서도 은퇴 후 허기진 마음을 달래 줄 음식점 하나 있지 않았을까. 

 2012년에 대전역 5, 6번 플랫폼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가락국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내가 군복무 하는 동안에는 대전역 1층 롯데리아 옆에 그 맛과 유사한 가락국수를 파는 집이 있었다. 지금은 그 마저도 사라진 듯 하지만 대전역 가락국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 기억에 남아서 공허한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추억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역 1층의 가락국수 집에서 팔았던 가락국수와 꼬마김밥


 어떤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의 맛보다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에 대전에서 큰집인 태안으로 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거나 국도를 통해 공주, 청양을 넘어 가는 방법. 우리 가족은 늘 두 번째 방법을 이용했다. 물론 칠갑산을 넘어가는 길은 매우 험했고 멀미가 심했던 내가 늘 그 산길을 오르다가 토를 했지만  그 길을 끝까지 다 오르면 딱 점심 때쯤 칠갑산 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구에 있었던 맥반석 오징어와 쥐포를 굽는 열기, 남자화장실 앞에서 찰각찰각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호도과자 기계, 산 속이라 테이블 위를 쉼 없이 날아다니던 파리, 그리고 호수를 배경으로 보이던 조각공원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그 휴게소에서 제일 좋아했던 음식은 털보만두(9개 칸에 8개 밖에 들어있지 않았던 만두, 94년에 털보식품은 부도가 났는데 어째서 그 훨씬 후에 내가 그 만두를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였다가 나중에는 어묵우동으로 옮겨갔다. 칼칼하게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면을 먼저 먹고 어묵을 집어 먹으면 멀미를 했던 기억도 싹 내려가고 휴게소를 나갈 때쯤이면 고구마 스틱을 한 손에, 반대 손에는 반건조 오징어를 들고 차에 다시 오르게 된다. 물론 서산을 지날 때쯤 다시 멀미를 하겠지만.

그때와 같은 맛은 아니지만 요즘 제일 맛있게 먹고 있는 어묵우동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늘 그 시기를 책임진 소울푸드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만두였고 중학교때는 짜장면, 고등학교때는 짬뽕과 치킨이었으며, 대학생때는 떡볶이, 군인일 때는 라면(특히 불닭볶음면)이었고 전역 후에는 파스타, 소바, 우동(일식 우동보다는 가락국수와 비슷한 느낌의 칼칼한 어묵우동), 냉면으로 소울푸드의 계보가 전해져내려왔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다루지 못하게 된 수많은 면요리들(왼쪽 위부터 로제빠네파스타, 온소바, 곱창국수, 짬뽕전골; 각각이 이미 소울푸드의 반열에 오를만 하다.)


 소울푸드 목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밀가루 음식, 특히 면을 아주 좋아한다. 해외여행에 가서도 그 지방의 유명한 면요리는 꼭 먹어본다. 대만에 갔을 때는 곱창국수와 우육면을 먹었고 일본에서는 튀김을 곁들인 소바와 우동, 돈코츠 라멘을 먹었다. 여름에는 거의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냉면(이따금씩은 밀면)을 먹는다. 항상 집에는 세 종류 이상의 라면이 있고, 맛있게 먹었던 일본 컵라면은 해외직구로 구매해서 먹기도 한다.


 김훈 소설가는 산문 '라면을 끓이며'에서 라면의 맛이 정서에 인이 박여 있다고 표현한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는 주말마다 멸치 육수에 소면을 말아먹었다. 그때 나는 우리 남매 중에서 가장 빨리, 또 많이 면을 먹었고 늘 내 몫의 소면 사리가 조금 더 준비되어 있었다. 짭짤한 멸치 육수에 고소한 통깨를 뿌리고 참기름을 뿌려 말아 먹었던 잔치국수의 맛은 아직까지도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나를 위해 남아 있던 여분의 면이 붇기 전에 나한테 주어진 한 그릇을 허겁지겁 집어삼켰던 기억, 여름엔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식히고 겨울엔 따뜻하게 데워 부어 먹었던 멸치육수의 맛. 그렇게 뱃속에 가득 들어찬 면발이 위장 속에서 불어나 봉긋 솟아오른 배를 두드리며 잠들었던 오후. 그래서 나는 면을 떠올리면 항상 배부르고 행복했던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면에 대한 좋은 기억은 냉면과 많이 관련되어있다. 대전에는 시내버스 종점에 닭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냉면을 만드는 집이 있다. 동치미, 열무와 같은 김치 국물을 바탕으로 하는 종류나 소고기 육수를 바탕으로 하는 종류와는 다른 맛으로 우리 가족 내에서는 호불호가 꽤 갈리고 있는데 적어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로부터 내 냉면에 대한 탐구심이 촉발되었다고나 할까. 늘 새로운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냉면 맛집을 찾는다. 대학생 때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숙식을 하며 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진주냉면으로 유명한 그 집의 냉면을 처음 먹어보았고, 서울의 유명한 평양냉면집도 종종 도전하는 편이다. 지금 근무하는 지역에서도 나만의 냉면 맛집을 개발하는 것에 굉장히 열심이다. 새로운 맛집을 찾고 발견하는 건 소심한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과감성이라고나 할까.


5박 6일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공항에서 먹은 첫 한식은 냉면에 불고기(좌)였고 진주냉면(우)은 지금 근무하는 지역에선 내 기준으론 다른 냉면집보다 질이 괜찮다.


 그리고 라면.

 나는 대학생 때, 처음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라면을 먹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글썽이며 어렵게 지냈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내 주머니 사정이 실제로 어려웠음과 별개로 라면은 정말 내가 좋아서 먹었다. 주로 평소에 잘 못먹게 되는 라면을 동경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에는 본가에 붙어 살았으니 끓인 라면은 원하면 먹을 수 있었다. 내 관심사는 오직 컵라면이었다. 얇은 면발에서 나는 특이한 맛이 좋았다. PC방이 1시간에 500원, 신라면 큰사발이 1개에 500원이었다. 그래서 오백 원 동전을 받으면 늘 컵라면 사먹어도 되냐고 어른들께 묻고는 가게로 달려갔다.

 나중에 500원으로 작은 컵조차 사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즈음에는 공부하러 다니던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팔던 끓인 라면을 먹었다. 화장실 다니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물도 잘 마시지 않았지만 점심 시간은 내가 유일하게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3500원짜리 돈까스와 함께 나오는 크림스프도 물론 맛있었지만 2500원짜리 라면에 1000원 공깃밥을 추가해 먹는 것을 나는 더 든든하게 느꼈던 것 같다.

 요즘도 라면을 여전히 좋아한다. 취향도 변해서 처음에는 빨간 봉지의 매운 국물 라면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주황색 봉지의 구수한 라면에 계란을 풀어 먹고 밥을 말아먹는 것을 더 선호한다. 가끔씩 대패삼겹살이나 콩나물, 햄, 만두, 떡국용 떡을 넣어먹기도 한다. 짜장 라면을 물을 덜 넣고 졸여가며 끓여먹는 방식을 고안해서 꽤 오래 사용해왔지만 SNS 상에서는 최근에나 알려지는 분위기다.

 라면의 가장 큰 메리트는 역시 간편함 아닐까. 사진이 없어도 떠오르는 비주얼. 맹수처럼, 외로움처럼 허기는 언제나 공격적이다. 이토록 맹렬한 허기를 잠재우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선택지. 따뜻한 국물. 주린 배를 부여잡던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인스턴트 에너지.


18년도 여름, 나리타 공항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 '연탄 한 장'에서는 '삶이란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한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나에게 삶이란 내가 삶에서 얻어왔던 따뜻함을 어떻게든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길이다. 나는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산다. 백일장을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먹었던 따뜻한 가락국수처럼, 지쳤을 때 허기를 달래주었던 라면처럼, 좋은 기억을 불러다주는 냉면처럼 나도 내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토록 든든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물론 늘 내 생각대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완벽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으로 인한 실수 때문에 내 주변을 떠난 사람도,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이 광활한 우주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국수 한 그릇 말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은 것 같다. 나는 결국 다시 실패를 겪을 것이고 앞으로도 어떤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날 것이며 그때 나는 여전히 슬퍼할 것이고, 괴로움에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이 우주에 내가 말아준 국수를 먹고 허기를 채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면을 삶고 육수를 내는 과정을 게을리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우주에서 당신은 결국 혼자가 아님을 믿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괴로움으로 고민하는 밤의 정거장 속에서 적어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혼자가 아닐 것이다. 내가 위안을 얻어 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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