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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May 25. 2023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할 때

누군가 누른 라이킷에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그간 일이 너무 많았다.

정말 이래도 괜찮나 싶을 만큼 잠을 자지 못했다.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프리랜서 1년 차인 나는 언제부턴가 일에 치여 산다. 가끔 '일 많은 팔자'라는 것과 '많이 벌고 많이 쓴다, 그러나 돈이 끊이지 않는다'라고 했던 그 사주쟁이의 말이 떠오른다. 어쩌다 보니 남동생도, 나도 프리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남동생이 한 번은 그런 말을 했다.


돈을 많이 번다고 꼭 좋은 건 아니야, 모든 건 양면이 있어.


일주일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일을 하면, 누군가의 월급 혹은 그 이상을 벌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일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구라도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있고, 온전히 그 일에만 투입할 시간이 없으니 남들 자는 시간에 그 일을 해야 한다는 혹독함이 있다. 마감이 정해진 일이란 그렇다. 마감까지 많은 시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 않다. 마감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목을 조여 온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 시간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꼭 바쁠 때 힘겨운 일들은 찾아온다. 일을 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다. 반려동물도 함께여선 안된다.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에 서면 어느 정도 일의 능률이 오를 순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돌봐야 할 동물과 식물과 또 남자 사람이 있다. 그들은 모두 내 손길이 닿지 않으면 엉망이 된다. 동물과 식물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난다. 동물과 식물에게 밥을 주는 나는 사실 엄마나 다름이 없다. 챙겨주지 않으면 그들은 생명이 위독해진다. 최근 나는 그들에게 "엄마가 못 챙겨줘서 미안해"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이 소중한 생명을 키울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괴감도 밀려왔다.



남자 사람은 어른이지만 챙김이 필요하다. 이 남자 사람은 바로 티가나 지는 않지만, 어쩌면 가장 무서운 핵폭탄을 품고 있다. 남자 사람은 상대가 상냥하고 평온하기만을 원한다. 어쩌면, 일이 없는 상태 거나 적당히 돈 버는 일과 집안일을 해 놓는, 말하자면 모든 것을 잘하는 그런 여자가 되길 바란다. 모든 남자의 바람이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평화로운 가정을 원한다.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균형감 있게 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밤을 새우면서까지 일을 해서는 안된다. 내 몸이 둘이 될 수는 없듯이, 일 자체를 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동생이 말한 '많이 일하고 많이 버는 것'과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지만, 어느 것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많이 벌면, 돈이 많아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을 모두 저당 잡히고, 건강을 해치고 씀씀이가 커진다. 또 남에게 많은 걸 퍼주게 된다. 물론 내 경우는 그렇다. 결국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조차 망각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한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요 근래 찾아온 우울함은 다 이유가 있었다. 머릿속을 채우는 것이 모두 '일'과 '긴장', '피곤'이었으니, 어쩌면 우울은 당연히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으리라. 게다가 브런치의 글을 쓰는 것조차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으니, 내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얼마나 우울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남자 사람은 내게 나중에 예쁘게 주택을 지어 벚꽃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함께 술을 마시는 노후를 보내자고 한다. 그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 어떤 일이든 과한 건 독이다. 적당히, 불필요한 것은 탐하지 않으면서 더 건강한 정신으로 살고 싶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의 것들을 잘 돌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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