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May 21. 2021

언젠가는

어떤 슬픔은 아주 느리게 다가온다.

뜻하지 않게 들려오는 부고 앞에 넋을 놓기도 하지만, 슬픔이 진정한 슬픔으로 다가오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애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충분히 죽음을, 상대의 부재를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표면적으로 정해진 듯한 애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슬픔을 슬퍼할 수 있다.


좁은 소방도로 담벼락 밑에 축 늘어져 혀를 내민 채 죽어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그 날렵함과 예민함으로도 자동차 바퀴를 피하지 못했는지, 정수리 부분이 땅에 짓눌려 있었다. 담벼락을 따라 경쟁이라도 하듯 줄지어 선 차량들 사이에서 당당히 스스로 한 자리쯤 차지했으니, 살아있는 동안의 영역싸움에서 이제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도 있을까.

무덤처럼 가려주던 자동차들이 자리를 비울 때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죽어있는 고양이의 모양새가 급격하게 변했다.

바쁜 와중에도 나는 오가는 길에 그 자리에 자동차가 없을 때마다 죽어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낯선 자동차들이 떡하니 그 자리를 차지해서 죽어있는 고양이를 볼 수 없을 때는 왠지 못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내심 동네 주민 누군가 구청에 신고라도 해서 고양이의 사체를 하루라도 빨리 수습하길 바라면서도, 수시로 드나드는 자동차에 가려져 그 누구도 쉽게 죽어있는 고양이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봄과 여름 사이를 알리는 듯한 비가 삼일을 쉬지 않고 내렸다. 그 사이에 고양이의 사체는 떠밀리 듯 담벼락에 더 바짝 붙어버렸고, 자동차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나는 틈날 때마다 내 작업실 베란다에서 멀리, 그러나 또렷이 보이는 고양이의 변해가는 모습을 살폈고, 때로 자동차가 자리를 비울 때면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기도 했다.

비가 내려서 참 다행이구나.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어느새 훤히 드러난 뼈들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보였다. 또 그다음 날에는 하얀 거죽 같은 것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과 섞여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몇 마리의 참새들이 그 위를 드나들며 부리를 쪼아댔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까마귀 두 마리가 유독 바쁘게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같기도 했다.

훤히 뼈가 드러나기 전에, 사람들의 발길에 치이고 빗물에 씻겨나가기 전에 누군가 선뜻 고양이의 사체를 한적한 곳에 깊이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면, 여기에서의 고단함을 잊고 고양이는 더 깊이 잠들 수 있었을까.


얼마 전 갑작스레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K를 생각했다.

하필 비가 내리는 날 칼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뒤늦은 K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작업실 베란다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오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부터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파트로 인해 훤히 보이던 앞산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화가 났다. 흐려진 시야 사이에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낯익은 고양이 몇 마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서로가 살갑게 연락을 한 적도, 진하게 술 한잔 기울인 적도 몇 번 없었지만 나는 K의 죽음이 유독 슬펐다.

늘 슬퍼 보이던 K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어떤 신부님의 말과,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어떤 스님의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원치 않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죄악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누구에게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인지, 그 무간지옥이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다.

스스로의 삶을 내려놓을 상황이면 그 삶 자체가 이미 무간지옥 그 자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 살아 있어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들은 삶에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3D 프린트 기술을 이용하여 건물을 짓는 영상을 최근에 보았다. 급격하게 진일보한 3D 프린트 기술에 놀람과 동시에, 머지않아 제품을 생산하듯 너무도 쉽게 뚝딱 만들어진 장기들이, 너무도 간단하게 우리의 몸속 노화된 장기를 갈아치우는 날이 온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는 끝 모르는 탐욕을 가진 사람들은 또 어떤 기괴한 욕망들로 세상을 추하게 물들일까.


나는 K의 죽음이 못내 안타깝다. 스스로 삶을 저버린 이들의 모든 죽음이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의 선택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수도 없이 사라져 갈 이 지구의 모든 생명들의 명복을 빈다.

이전 11화 당신들의 천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