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어쩌다 만난 예수쟁이는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회개하고 예수만 믿는다면,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갈 수 있다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주일마다 자신은 매번 새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효력이 피부 재생에까진 미치지 못하는지, 고목나무 껍질 같았던 그의 얼굴 피부는 그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전지전능한 신이 손가락 하나 까딱거려서 생성된 이 거대한 우주가, 인간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그분의 높고 깊은 섭리 안에 유지될 수 있다는 설교 앞에서는 그 어떠한 인간의 논리도 하잘 것 없는 것이 된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능글맞게 웃는 목사와 그 무리들이 나라를 다시 들쑤셔 놓았다.
그들에겐 양심이나 도덕, 사회의 규율 같은 것은 그들이 떠받드는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 앞에서는 하찮은 것에 불과한 모양이다.
해괴한 믿음으로 중무장한 그들의 전두엽은 불가사의한 환영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회개만 하면 언제든 깨끗한 백지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타인의 삶을 침해하고, 공공의 질서를 좀 어지럽히는 것쯤이 무슨 대수가 되겠는가.
숨 막히는 방호복을 입고 또 많은 시간을 생고생할 의료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지만, 정신이 깊게 병든 이들의 언행들과 그로 인한 피해까지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면,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의 상실감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슴에 새겨야 할 격언에도, 나는 진심으로, 연일 허언을 쏟아내는 뻔뻔한 그 목사가 안녕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온전히 스스로일 수 없는 이들이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못된 어른들의 야비한 면만 배워서 흉내 내는 학교의 일진들, 이름만 번드르르한 온갖 잡스러운 협회들,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홀려놓는 사이비 종교 단체들 등 자신들의 이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집단들은 우리 사회의 곳곳을 시커멓게 멍들인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무조건적인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신이 존재한다면, 집단으로 모여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침 튀기고 울부짖는 아수라장이 아니라, 홀로 스스로의 내면을 잘 살피고 온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의 옆에 함께 하지 않을까.
분열이 더 나은 조합을 위한 수순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고통은 너무 모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