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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28. 2017

둘째 날

제주에서

1.

문어라면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해물라면은 그 속에 가득 담긴 문어를 씹어대느라 어금니가 욱신거렸지만, 큰 양푼에 가득한 양을 깨끗이 비우고 나니 숙취가 조금은 사라진 기분이었다.

소박한 가게 안에는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수없이 많은 낙서들이 천정과 벽을 가득 채웠고, 신기하게도 여러 국가들의 지폐들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뉴스에선 툭하면 외국과의 각종 순위 경쟁을 비교하곤 하던데, 흔적을 많이 남기는 국가 순위를 매기는 조사 같은 건 왜 이루어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그 옛날 하멜이 표류를 기록하기 위해 어딘가 새겨놓았던 흔적이, 중국인 관광객의 셀카 사진 속 배경에서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2.

삶의 편린들에 대한 생각이 가시적인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그 순간의 생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유의 목적이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유로 인해 스스로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마침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된다면 기록은 불필요한 일이 될 수 있다.


3.

아쿠아 플라넷엔 신기한 생명체들이 거대한 수족관 안에서 바쁘게도 움직였다.

둥근 이동통로로 만든 관을 따라 물개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유연하고 민첩한 동작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곤 했는데, 물개의 그 반복적인 움직임은 좁은 공간에 갇혀서 나타나는 이상행동처럼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해산물을 먹어치우고 살아왔으면서 순간 유리박스 안에 갇힌 생명체에게 불쑥 연민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것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나, 자유를 빼앗는 것이나 모두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것일 텐데, 자연을 위해서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최선일 것이고, 그 이전에 인간이 없었다면 이 지구는 아마 훨씬 풍요로웠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그런 것들에 대한 토론은 싱싱한 생선회를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4.

그 많던 아름다운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5.

왼쪽 뒷다리가 잘린 고양이는 차가 다니지 않는 틈을 타서 펜션 화단을 지나 반대편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밑으로 숨어들었다. 절룩거리는 실루엣이 밤늦은 퇴근을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 뒷모습을 따라간 나는 멀건 담벼락에 알코올로 가득한 방광의 소변을 쏟아내었다. 낮은 담벼락 너머에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통닭집이 그 흔한 화한도 하나 없이 분주한 새벽을 밝히고 있었다. 어쩌면 절룩거리는 고양이가 무수히 드나들었을 쪽문을 통해 나가 보니, 술에 취한 한 무리의 청년들이 인생 별거 없다고 환호성을 하며 통닭집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 그들의 객기가 눈부셨다.


6.

우리가 여기에서 만났으니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또 만날 거야.

그렇지 않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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