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0
개처럼 살고 싶다.
개는, 주인만 본다. 주인만 좇는다. 주인만 따른다. 주인만 신뢰하며 주인에게만 충성한다.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곁눈질도 안 한다. 돌아서지도 않는다.
바치를 키우면서 종종 생각한다. (바치는 우리집 반려견이다.)
개가 주인만 바라보듯, 나도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면 하나, 보호.
언니가 아팠던 적 있다. 일어날 힘도 없어 사흘 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 곁을 바치가 지켰다. 바치도 3일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식음전폐. 산책은커녕 물도 안 마시고 사료도 안 먹었다. 언니 옆에만 있었다. 언니 체온을 재려고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바치는 한껏 경계하며 보초를 섰다.
언니를 보호하려고 들었다. 눈물도 없는 언니가 바치 보살핌에 눈시울 적시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장면 둘, 사랑.
늘 있는 일상. 신문 가지러 현관문 앞에만 나갔다 와도, 바치는 오랜만에 본 양 나를 맞는다. 10분 남짓, 분리수거라도 하고 오면 난리가 난다. 며칠 만에 만난 사람처럼 그렇게 그리워한다.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안기는데, 얼마나 격렬한지.
“도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분명 이 의미다.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다 싶을 만큼,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매일 그렇게 사랑한다. 매일, 놀랍다.
#장면 셋, 질투
오랜만에 조카를 보러 갔다. 바치도 데리고 갔다. 웬걸. 조카 한 번 안아보려고 하니, 바치가 먼저 안긴다. 품에 안겨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조카 좀 만지려고 할라치면, 내 손을 저지하며 나를 말린다.
온몸으로 ‘나만 바라봐’라며 애교를 부린다. 조카에게 시선이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는 바치를 보며 안타까웠을 정도. 라디오에서도 들었다. 어느 반려견 집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가족들 관심이 아기에게 쏠리자 반려견 상심해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는 이야기. 개가 이렇게 질투가 심한지, 처음 알았다.
작년 입양한 둘째 쿠로도 마찬가지. 성격이 다를 뿐 사랑 많고 충성심 강하며, 질투하는 모습은 똑같다.
모든 개가 그런가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나 보다.
개들은 도대체 내가 뭐가 그렇게 좋을까? 도대체 어디가.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외모가 잘 나서도 아닐 텐데. 집이 으리으리하게 좋지도 않은데.
조건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 조건을 버리자 답이 나왔다. 그냥, 주인이라서. 우리가 ‘주인’이라서.
우리가 자기를 선택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개들은 우리를 사랑한다. 그게 이유다. 그게 전부다.
시선을 옮겨봤다. 나와 반려견에서, 나와 하나님에게로. 자연히 깨달아졌다.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은 항상 나와 같이 있고 싶어 하시는구나. 언제나 나와 동행하기를 바라시는구나. 늘 나를 보호하시는구나. 하나님 말고 다른 것에 눈을 두면, 하나님은 애가 타시는구나. 질투하시는구나.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나라서. 나를 선택해서 자녀 심으셨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은 내가 무조건적으로 당신을 신뢰하고 사랑하기를 바라시는구나. 당신만 바라보기를 원하시는구나. ‘
묵상 중에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0).
그렇다. 창조물에는, 창조주 하나님 모습이 담겨 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엉엉 울었다.
개보다 못한 내 믿음이 싫어서. 믿음 없는 내 모습이 미워서.
“하나님, 저는 개보다 못해요. 쿠로보다 못해요. 쿠로는 내가 부르면 와요. 아슬아슬한 자세인데도 그냥 안겨요. 묻혀요 내 품으로. 떨어질 것 같은데도, 나를 믿어요. 그냥 믿어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냥 나라서 믿어요. 의지해요. 다 맡겨요. 온몸을 내게 맡겨요.
그런데 저는 막 궁리를 하죠. 뜸을 들여요.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내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최고 것들로만 분별해서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못 믿어요. 믿는데 못 믿어요.
하나님, 믿음 주세요. 저 믿음 주세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 부인 못하는 그 믿음, 진짜 믿음, 저 주세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저 주세요. 천국 열쇠 지니고 살고 싶어요.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고 싶어요.
좋은 집, 좋은 차, 돈 자랑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 딸인 거. 하나님 딸이라는 사실 하나 자랑하면서 살래요.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 하나 믿고 살고 싶어요. 하나님만 보고 살래요.
세상이 악하게 변해도, 나 하나 의로워서 나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진노를 참으시기를 바라요.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요. 믿음으로 하나님 기쁘시게 해 드리는 딸 되고 싶어요.
하나님 저 그렇게 만들어주세요. 하나님만 바라보는 딸로 만들어주세요.”
이 기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죽는 날까지, 죽는 순간까지 구해야 할 믿음이다.
나는 안다. 나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안 믿는다.
나를 바꾸어가실 하나님을 본다. 성령님을 통해 나를 '믿음만 자랑하는 딸'로 만들어가실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만, 믿는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 사랑을 욕심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