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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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잘 기억한다. 만 세 살 때부터의 꿈들도 아직 기억하는 편이고. 네 살 때의 나는, 새벽마다 같은 꿈을 꾸어서 매번 같이 자던 엄마를 깨웠다. 자다가 "엄마 어딨어?"하고 잠꼬대하면 엄마가 손을 잡아주고 쉬야하게 화장실에 데려가고새벽에 밥도 차려주셨다. 밤의 코스 정식. 꿈, 엄마 손잡고 가위 풀리기, 화장실 가기, 밥, 다시 잠들기.
꿈을 꾸면 깊게 못 자는 거라고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꿈을 꾸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꿈을 꿔도 잊는 것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꿈을 제법 잘 기억하는 나도, 잊기에 아까운 꿈은 일어나자마자 메모해놓기도 하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자각몽일 경우에는 '깨고 나서도 잊지 말아야지'하고 꿈속에서도 다짐을 한다. 꿈들 중 비율적으로 대략 10%는 이유 혹은 의미-가 있는 꿈을 꾼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엄마한테 국제 전화를 걸어,
'엄마, 어젯밤 할머니가 꿈에 나왔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응, 어땠는데?'
'할머니가 배고프다,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어'
갑자기 엄마가 수화기 너머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왜 울어?'
'오늘이 할머니.. 기일이야.'
외삼촌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아들이 차리지 않는 제사상 때문에 엄마는 계속 노심초사하고 계셨는데
상황을 모르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국제 전화로 걸려온 내 전화를 끊고 엄마는 할머니 사진 앞에 작은 상을 차렸다. 그러고 있는데 이상하게 집 안인데도 어디선가 바람이 휙 불더라고 하였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친구가 결혼하는 꿈을 꾸기에 국제 전화를 했는데, 이후 그 친구는 얼마 후 곧 결혼했다. (나는 당시 그녀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 꿈에서 언니에게 화를 내었는데, 다음날 내가 꿈에서 화를 내서 전화를 했다며 언니가 전화 왔다.
큰 사건이 있기 전에도 종종 꿈을 꾼다.
나는 커다란 돔 안의 콘크리트 노출 천장(bare ceiling)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폭발이 여기저기서 시작되었다. 출구를 향해서 뛰었는데, 누군가를 두고 와서 도로 들어가 그 친구의 손을 끌고 마구 도망가는 꿈을 꿨다. 큰 폭발이 있었고, 간신히 빠져나온 그 거대한 돔의 천장에서는 악마들이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심하게 뛰는 심장박동 때문에 눈을 떠보니 파견 나간 지방의 당직실이었다. 꿈이었다. 상쾌한 아침이었고, 햇살이 밝았다. 난 늦잠을 잔 것뿐이다. 같은 당직실을 쓰는 아랫년 차의 친숙한 얼굴이 보이자 조금 안심이 되어,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후배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러자 뉴스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으며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바다 속으로 나있는 긴 계단을 한복을 입고 들어가는 꿈을 꾼 적도 있다. 바다로 들어가는 건지 나오는 건지 모를 끝도 없이 가파른 아찔한 계단이었는데, 그 계단에서 누군가가 내게, 내 동생이 죽었다, (현실에서는 나는 막내라 동생이 없다) 그러고는 엄마가 죽었다고도 말을 했다. 그 말에 흐느껴 울다가 , 내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너무 흉흉해서 개꿈, 나쁜 꿈으로 치부하고 돌아온 저녁, 전 날 아침까지도
"출근 잘하셔요^^"하고 웃으시던 경비 아저씨가 당일 새벽에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던다는 것을 알았다. 겁이 더럭 나서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엄마는 괜찮았으나 외할아버지가 위독해졌다고,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 며칠 후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바닷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애달픈 아이들의 소식을 들었다. 꿈이 오버랩되며 착잡하고 불안하여 심장이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 죽은 나의 동생은, 너희들이었니? 하며...
곧 며칠 후 나의 다리도 부러졌다. 그것도 발목뼈 세 개가 다 시원하게 제자리를 이탈했다.
흉흉한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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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때도, 꿈이었다. 꿈이 먼저였다.
턴 체인지 이후의 오랜만의 오프라, 집까지 꾸역꾸역 들어가서 실신하듯 잠이 들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엄마가 울고 있는 여자세 명을 보면서 '너무 불쌍하구나' 하고 읊조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장박동이 심하게 뛰어서 깨보니 새벽 5시이다. 이제 병원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병원까지 가는 길에, 경수고속도로는 평소와 달리 많이 밀리고 이상하게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초조 불안하다. 어젯밤 오프라고 친구도 강남에서 만나고는 굳이 병원에 다시 들어와서 랩(피검사 결과:미숙아들은 상태 체크를 계속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2회 정도의 정맥혈 채혈을 한다ㅡ아가들상태에따라 랩 체크의 횟수는 조정한다.)도 보고 애기들도 다 보고 갔는데 모두들 괜찮았는데... 이 근거 없는 불안함은 무엇일까.
병원에 도착하여 출근하자마자 웅성거리는 소리에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새벽녘에 진통으로 응급실로 온 산모가 응급분만을 하였는데, 출생과 동시에 사망한 termbaby(만삭아) CPR (심폐소생술) 이 있었다고 한다. 또 이 아가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십 년 동안 기다리다 무수한 IVF( In vitro fertilization - 불임시술 중 하나 )의 시도 끝에 겨우 가졌던 아가였다고 도 했다.
아가의 체중도, 주수도 모두 좋은 남자애였는데,
산모의 진통으로 새벽녘 들어와서, 분만하였으나 사산한 것 같았다.
아가의 심장을 누르고, 앰부를 짜고 있지만 단지 부모님의 위안을 위해 지속하고 있을 뿐, 실상 이미 죽어있었다.
" 아직 계속해주세요..... 혹시.. 살지도 모르잖아요 "
하고 아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십 년간의 기다림과, 열 달간의 기대감이 몽글몽글한 아가의 모습이 되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거품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그러나 아가의 팔다리는 이미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다.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던 아빠가, 정말 죽었습니까? 하고 우리들에게 묻는다.
.... 아기는 *시 부로 사망하였습니다....라고 , 누군가가,
아가의 포동포동한 팔다리를 , 엉킨 머리를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는 아빠 앞에 사망선고를 한다.
사망선고를 한 누군가가 나였는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말에 아빠는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나이가 지긋한 아빠는 아기에게서 손을 떼지 못하고, 아가의 멈춘 심장에 자기의 손을 대고 몇 번 더 눌러본다.
아빠의 슬픔이 내게도 밀려오는 것이 느껴져 내 가슴도 수압이 높아져 먹먹해져 버렸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나의 가슴은 빙하 아래쪽처럼 가라앉아있었다.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내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그 새끼 고양이들은 사랑스러운 쌍둥이 소녀들의 애완동물이었다. 이 쌍둥이 소녀들이 어느 사이에 내 집을 방문했는지 몰랐지만, 놀라진 않았다. 왜냐하면 꿈이니까.
쌍둥이 소녀 중 한 명이 울면서 내게 말했다.
<그 아이들은 우리를 정말 많이 사랑했어.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랑과 기억들은 그 아이들이 동물이기 때문에 사라지고 말 거야. 하지만 어떻게 사랑이 사라질 수가 있어? 그 고양이들은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우리를 사랑했는걸. 우리가 사랑한 그 많은 애정이 어떻게 사라져서, 거품처럼 흩어질수있어?
우리가 세상에 쏟아부었던 사랑들이 다 어디로 간 거야?
어떻게 죽음에 의해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했다가, 그냥 사라져버릴 수 있어?>
우리는 같이 울었다. 나는 또 울다가 잠에서 깨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도 여러 번, 신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저렇게 저물어 가는지, 사랑한 사랑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아기들은 어디로 가는지.. 나는 문장이 되지 못한 그런 물음들을 가슴에 묻고 있었는데, 꿈이 돼서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듣고 싶고 알고 싶었던 대답을 꿈속의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었을까?
얘들아, 그래서 우리가 여러 번 자꾸 태어나는 건지도 몰라..
아가는 뱃속에서도 사랑을 받았고, 또 뱃속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을 했어. 그리고 그 사랑을 기억해서, 다시 부모님에게 꼭 올 거야. 지금이 아니더라도, 지금이 아니라도...
왜냐하면 사랑은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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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중환자실 당직하는 새벽녘 잠깐 쪽잠 중에 꿈을 꿨는데, 나는 어딘가 외로운 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없고 황량한 곳에 아궁이들이 있었다. 어떤 여자가 있기에 여기가 어디냐 물으니 내가 간 곳은 꽃들을 태우는 곳이라고 한다. 꽃들의 화장터. 어떤 꽃이냐 물었더니 모든 사람들의 마음마다 각자의 꽃이 핀다고 했다.
이 곳에 내 꽃도 있느냐고 물었는데, 여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내 꽃의 이름은 '백련화'이며 쉽게 지지 않는 꽃이라서, 그래서 태워지지 않아 여기에 내 꽃은 없다고 하였다.
어쩐지 위로가 되는 꿈이었다. 나의 꽃은 그 외로운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둔감해지지 않는 나를 나무라는 이 병원에서, 하루하루를 깨어서 바라보고 싶다. 시들지 말고, 타버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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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학회로 제주도 같이 갔다가 돌아오는 저녁 비행기 안에서 지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또 내게 말을 건다. < 영혼은 지난 50일 동안의 좋은 기억을 간직한다면 하루를 더 살려고 한단다... 죽은 이이든 산 이이든 그렇단다... >한다.
내용도 없고 말만 건넨 이상한 꿈이다.
이렇게 짧은 잠을 깼는데, 비행기 좌석에서 바라본 창문 속에서는 아직도 해가 어깨너머에 걸려 있었다.
그래요
<지난 50일간의 좋은 기억>을 가지게끔 매일을 살아야지.
내가, 하루라도 더 내 곁에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고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루라도 더 머무를 이유를 주어야지.
좋은 기억을 남겨주어야지. 하고.
그러고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