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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Jul 06. 2024

티니핑관람차와 집회 사이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주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투쟁 9주년에 반올림이 연대하러 가기로 했다. 최근 삼성 협력사 케이엠텍을 다니던 대학생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제보 이후 반올림은 구미에 있는 케이엠텍 건에 매달리고 있었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에서 '삼성 협력업체 백혈병'문제로 이동해 간 터였다. 자본과 직업병의 흐름에 따라 대응하는 활동은 자연스러웠고, 서울에서 구미로 오가는 것도 당연했다. 

옷차림은 여행 같아도 난 출장을 간다. 

마침 주말이었고, 이모도 살고 있는 구미라 익숙했고, 포항에 계신 부모님이 손녀를 보러 오기도 딱 좋았다. 가장 좋은 건 출장 겸 여행으로 모녀가 떠날 사이 혼자 집에서 친구들 불러 시간을 보낼 남편이었을 거고.


아이와 동행하는 출장 겸 여행을 준비하는 한편, 부모님과 이모와 스케줄과 숙소 등을 조율하기 위해 분주했다. 나의 출근, 다른 활동들, 아이의 등하교, 돌봄 등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 아빠랑 주말에 집에 있을래! 아빠 친구들이랑 부르마불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라고 외친 순간 남편과 나는 동시에 곤란해졌다. 일가친척, 친구, 동료들이 엮인 주말 구미행에 아이의 변덕은 바로 잠재워야 했다. 아이스크림과 스티커 장난감 등으로 달래기 위해 다이소와 백화점을 두루 거치고 보니 주말도 전에 에너지가 소진됐다. 


신나게 손을 흔드는 남편을 뒤로하고, 무거운 몸으로 들뜬 아이아 KTX에 올랐고, 얼마뒤 할머니는 애뜻히 손녀는 오랜만에 만나 안게 되었다. 나. 참 잘했네! 이모의 살뜰한 집밥도 얻어먹고, 이모부가 차로 데려다 주워 쉽게 금오산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이르니 여행을 온 건지 출장을 온 건지 헷갈렸다. 빨간색 케이블카를 타고 아이는 신나 했고, 걷기 불편했던 아빠도 신이 나 물이 마른 폭포에 까지 이르렀다. 심심한지 핸드폰을 만지작하던 아이가 자리에 핸드폰을 두고 와서 두 번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폭포까지 오가는 건 양육자의 흔한 일상일 거다. 

여행온 이들~ 곧 집회가 갈 나, 마음이 같이 쓰인다.

구미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현재 협력업체를 하는 이모부와 산업재해 얘기를 나누다 아빠의 차로 집회 현장까지 이르고 보니 서로가 낯설다 싶다. 경상도이고, 보수적이며, 집회 투쟁은 참으로 멀 것만 같은 이들인데 경찰이 즐비하고, 농성장이 곁에 있고, 세상과는 좀 다른 마음가짐과 생각들로 모여드는 이들이 이리 많다니, 내 딸만 이상한 줄 알았더니! 양쪽에 나부끼는 현수막을 지나 아빠차는 빠져나갔고, 집회 후에도 데리러 왔다. 고등학교 등하교에 이은 셔틀. "나는 반올림의 뭐라고 해야 해?" "후원인!" 스스로도 새삼스러웠던지, 나는 왜 이러고 있었냐. 집회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엄마는 반올림, 나도 반올림, 반올림은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해.라고 이해를 하는 아이는 종란 이모가 왔는지, 왜 상수 삼촌은 안 왔는지 활동가들의 안부를 물었다. 

구미에서 주문한 현수막은 생각보다 작았고, 다시 프린트하여 피켓을 여러 개 만들었다.

다음날, 금오산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는데, 현수막을 업체를 만났다. 다음날 베트남 총리가 한국을 방문해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포럼을 개최하는데 1인 시위 피켓이 필요했다. 서울에서 주문하여 주차로 배송 시간으로 번거롭기보다 구미에서 가깝게 가져다주는 현수막 업체를 이용했던 것. "그게 뭐냐? 왜 여기서 현수막을 받냐? " 궁금해하는 엄마에게 설명을 살뜰히 해줘도 되건만, 쉬고 싶었다. 










박정희가 심었든 말든 소나무숲을 혼자서 산책하고 싶었다. 비가 오니 복잡한 머릿속이 가벼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 아이는 낯선 환경에 반가운 할머니 할아버지 앞이라 흥분했고, 엄마 아빠도 이모 이모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행복하고 또 흥분했다. 대꾸해 줄 것도, 챙길 것도 변수도 그래서 많았고.

아이는 또 구미에 갈꺼란다. 금오랜드 티니핑관람차가 있으니까. 나도 자주 가야 한단다. 일로...

아빠의 취향에 맞춰 성리학 박물관을 다니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보이는 티니핑관람차를 또 아이랑 타게 되었다. 그 사이 조름과 피곤함과 성화와 말림과 타협과 짜증의 결과, 티니핑 음악이 나오는 분홍색 관람차를 타고 아이를 찍어주었고, 어제의 집회와 케이엠텍 백혈병 피해자 어머니의 눈물과 호소는 저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출장과 여행...

동료와 가족...

부모와 아이....


를 함께하기 위해 내던 에너지는 관람차에서 이미 끝나버렸나 보다. 그 이후로도 구미 과학관에 들러 코코몽 우주여행 영상도 보고, 각종 체험도 하고... 아. 모르겠다. 5:30분 기차인데 4:30부터 KTX 역사에 앉아 집에 가기만을 바랐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뭘 해도 뾰족해진 내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집, 12시까지 피켓 만들고 프린트하고.. 다음날 집에서 또 먼 1인 시위 현장을 가기 위해 아이 등교를 아빠에게 맡겨두고 새벽부터 집을 나서게 된다. 


활동가와 일반인 그런 구분이 가능할진 모르지만, 주말은 일반만 했으면 좋겠다 싶다. 주중에도 활동가와 일반인이 수시로 오가기도 하는 나이지만, 주말인데도 곧 시작할 줌 세미나를 듣기 위해 대기하는 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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