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다시 찾은 출장

by 권영은

한강 소설과 오설록 차 몇 가지와 허니버터칩 등 한국 과자를 챙겨 타이베이 비행기를 탔다. 직전까지 여행에 가족, 특히 아이랑 함께했다 혼자서 수속하고 면세물품을 찾고 화장실 다녀오니 수훨했다. 뽀로로 쉼터에서 두고 온 아이를 잠시 그려보았지만, 며칠은 아빠랑 잘 있겠지 믿는다.

대만 출장이 여러 번이라 혼자 거뜬히 호텔로 찾아간다 했다가 발표 준비가 빠듯하자 사전에 안내를 부탁했다. 공항 입구에 권영은이라 쓴 푯말을 따라 네 명이 거뜬히 탈 밴으로 안내받았다. 혼자서 세상 조용했게 흐르는 풍경을 감상하며 호텔에 쉽게 도착했다.

스위트룸이 예약되어 있었다. 오래된 호텔이지만, 아래 수영장도 있고 대만 현지식 조식으로 정갈했다. 무엇보다 초청된 이들이 같은 호텔이라 오가며 인사하고 우연한 만남도 있고. 혼자서 타이베이 대학교 인근이라 갈만한 서점과 야시장이 있었다.


우선, 기혼 여성이 아이 없이 10년 만에 스위트 룸에 앉고 보니, 자체가 젠더평등한 포럼이다 싶었다. 남성이 출장 가면 아이 돌봄을 자연스레 걱정했을까. 이 고요를 낯설고 귀하다 여겼을까. 창밖의 풍격에 새삼 감사했다. 자기만의 방이 대만에서 비로소 주어진 것에 환희했다.


버지니아 울프 가방을 메고 융캉제까지 산책한 길,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칭얼거림에 피곤해하며 걸었을 길들이 기본값 같고, 우거진 야자수에 산세베리아 가득한 공원을 지나며 정갈찬 찻집, 유기농 상점 지나며 잠시 들려보는 재미는 색달랐다. 결혼 전 홍콩에서 맛본 그 기분. 출장 전 자유시간이라 달콤하고 혼자라 더 새콤했다.

저 카페에 앉아있는 나, 저 음식을 시키고 조용히 시간을 즐기는 나, 심심하고 적은 음식에 충만한 시간을 즐기는 나, 차 상점에 들려 스몰토크 하는 여유 즐기는 나, 반가웠다. 문구점에서 내가 쓸 도화지와 색연필을 사고선 나를 다시 찾은 것 같아 너무 반가웠다.


keyword
이전 13화여성 해방의 날은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