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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Jan 24. 2024

인생이 맛있어지는 온도, 마흔

아들아~ 이게 인생의 맛 이란다. 쓰고, 시원한 맛.

# 금요일 9시, 혼맥 <혼자가 되는 고요의 시간>


 나는 입이 짧은 편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도 없지만 그렇게 싫어하는 음식도 없다. 지인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음식을 고를 때 '난 아무거나'가 습관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런 나에게도 진짜 사랑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금요일 밤에 혼자 마시는 맥주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두고 다람쥐가 알밤을 모으듯 안주를 사다 넣어둔다. 금요일 밤 9시. 맥주, 감자깡, 오징어, 땅콩이 놓인 소박한 술상을 차린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낸 나에 대한 보상이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일주일을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내내 설렜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설렐 거야.
- 생떽쥐베리 '어린 왕자' 中 -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한다. 맥주를 맛있게 먹기 위해 그날의 날씨와 어울리는 맥주잔도 미리 골라 놓는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퇴근을 한다.

  내가 '금요일 9시, 혼맥'을 즐기게 된 것은 마흔의 문턱을 들어서던 무렵이었다. 육아, 일, 인간관계로부터 떨어져 '혼자가 되는 고요의 시간' 맛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




# 맥주가 맛있는 온도,  <맥주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

커피가 가장 맛있는 온도 80~85도
고기가 가장 맛있게 구워지는 온도 177도
사과가 가장 맛있는 온도 4~5도
맥주가 가장 맛있는 온도 4~6도(여름철)/ 8~12도(겨울철)


 입이 짧다고 해서 음식의 맛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양'보다 '질'이라고 할까?

 음식의 맛은 신선한 재료나 음식 솜씨도 중요하지만 '온도'도 한몫을 한다. 저마다의 음식들은 가장 맛있는 적정 온도가 존재한다. 겨울철 맥주의 적정 온도는 8~12도. 냉장고보다 베란다에 내놓았다 먹는 것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누군가는 음식은 어떻게 먹든 똑같은 음식이지 뭘 그렇게 따지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먹을 바에는 조금 특별하게, 맛있는 방법으로 먹는다면 음식을 오롯이 즐길 수 있게 된다.

출처 : 한국표준과학원


 # 인생이 맛있어지는 온도, 마흔  <인생을 가장 즐길 수 있는 나이>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밥상에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할 때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아~ 국물이 진짜 시원하다."

뜨거운 국을 들이키며 아빠가 한마디를 하셨다.

"아빠, 왜 거짓말해? 이렇게 뜨거운데..."

 후후 불어먹어도 뜨거운 국을 먹으며 연신 시원하다 말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이 시원한 맛을 알게 되면 넌 어른이 된 거야."

어느 때부터였을까... 난 인생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시원한 국물의 맛을 알게 되었다. 난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금요일 9시, 혼맥을 즐기는 나에게 아들이 다가왔다.

"엄마, 맥주 맛있어? 무슨 맛이야?"

"쓴 맛, 그리고 시원한 맛."

"나한번 먹어봐도 돼?"

"응. 근데 맛없을 걸? 엄청 쓰거든."

 맥주를 한 모금 홀짝거린 아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엄마, 이렇게 쓴 걸 왜 돈 주고 마셔?"


아들아~ 이게 인생의 맛 이란다. 쓰고, 시원한 맛.

출처 : Pixabay




인생이 맛있어지는 온도, 마흔.

인생의 쓴 맛, 단 맛, 시원한 맛을 모두 알게 되는 나이, 그래서 인생을 가장 즐길 수 있는 나이. 나는 지금 인생의 맛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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