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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Feb 01. 2024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처럼

노인과 바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단상

# 남해를 사랑하는 이유

 

통영 여행을 왔다. 하루 안에 가지 못할 곳이 없을 정도로 작은 우리나라지만 동해, 서해, 남해가 주는 감동은 저마다 다르다. 동해는 거친 파도와 푸른 물결이 마치 우리 젊은 날 같다. 서해는 고요하고 낙조가 아름다운 모습이 노년의 우리 같다. 남해는 잔잔하지만 분주하게 배가 드나드는 모습이 마흔의 '나'같다. 동병상련을 느껴서인지 나는 남해가 참 좋다. 바다가 내어주는  평안함이, 세상시름 잊게 해 주는 광활함이, 섬에 둘러싸여 잔잔하게 품어주는 너른 품이 좋다.



# Episode 01. 노인과 바다


  여행 첫날, 바닷가 산책을 하다가 방파제에서 낚시하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인심 좋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몇 마디 대화를 통해 나와 동갑의 딸이 있다는 것과 소일거리 삼아 저녁 찬거리 낚시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의 낚시 가방에는 낚시 도구 외에 도마와 칼도 들어있었는데 낚시한 물고기를 손질해 간다고 하셨다. 집에 있는 아내를 위한 작은 배려였다. 사랑꾼이심에 틀림없다.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 아내도 서울 여자라고 하시며 매우 반기셨다.

"아니 어떻게 서울 여자분을 만나셨어요?"

"내가 통영에 여행 온 아가씨를 한눈에 반해서 꼬셨지." 하며 발그레 수줍은 미소를 지으셨다. 노인의 청춘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얀 피부의 젊은 서울 아가씨와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통영 바닷가 청년이 서로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저녁 6시쯤이 되자 노인의 전화가 연신 울렸다.

"할매가 나 저녁 먹으라고 전화하는기다." 노인은 밝은 얼굴로 통화를 마친 후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검은 봉투 하나를 꺼내 방파제 기둥에 묶어두었다.

"그 봉투는 왜 묶어두시는 거예요?"

"아, 낚시꾼들이 이렇게 묶어두면 쓰레기를 바닥에 안 버리고 여기다 버린다. 그럼 내가 내일 가져가고 또 새 봉투를 걸어놓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닌데 이거라도 해놓으면 좋지."

 노인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자녀들과 대화도 하고 낚시도 하곤 했는데 자녀들이 다 떠난 지금은 바다와 어울리고 대화도 나눈다고 했다. 그러니 바다를 아껴줘야 한다고...


 노인의 말은 나에게 짙은 여운을 남겼다. 바다를 위해 비닐봉지를 매다는 투박한 손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행복해 보이는건 기분 탓인가.  필요하면 언제든 저녁 찬거리를 내어놓는 바다가 있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할매가 있으며, 노인의 손길로 깨끗해진 바다가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떠나기 전 방파제에 다시 들렀다. 검은 비닐봉지가 제법 묵직해져 있었다. 바다는 앞으로도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노인과 바다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 Episode 02. 노인과 바다


 두 번째 날은 리조트 앞 바닷가에 나갔다. 그곳에도 한 노인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고수의 냄새가 폴폴 났다. 낚싯대를 넣자마자 물고기가 잡히는 신비로운 낚시를 하고 계셨다. 30분 만에 20여 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

"와, 엄청 잘 잡으시네요?! 물고기 진짜 많아요."

"나도 몇 마리 먹고 저기 저쪽 가면 힘들게 사는 할매, 할배들 있는데 갖다 주면 반찬으로 그만이지요. 내가 낚시는 잘하거든."

 노인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인은 시간 날 때마다 낚시를 해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에게 잡은 물고기를 나눠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의 낚시가 끝난 후 언제 왔었냐는 듯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나셨다. 금전적인 도움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남을 돕는 그 모습이 현빈보다 멋져 보인 것은 아름다운 석양 탓이었을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시 中 -




#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처럼


 내가 만난 노인은 두 분 모두 넉넉한 형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물론 외적인 부분으로 추측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행복해 보였을까?

 40대에 접어드니 주변 사람들의 대화 중 절반은 주식, 부동산, 투자 등 돈과 관련된 이야기다. 내가 남보다 적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위축되기도 하고, 성공하기 위해 애를 쓴다. 나를 위해 사느라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남을 위해 내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TV에 나오는 부자들, 연예인들 얘기라고 치부한다. 물론, 아주 가끔 '내가 성공하면 기부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과연 그날이 올진 알 수 없는 일이다. 성공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오늘도 우리를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노인을 만나고 나니 불현듯 생각이 스친다. 혹시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처럼 우리는 행복을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내 옆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주위를 두리번거려보자. 행복은 바로 옆에 가만히 앉아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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