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되어도 괜찮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지막 이야기

by 붙박이별

#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누구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인생 독고다이'라고 생각하라.

이효리가 모교 졸업식에서 후배들에게 전한 말이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오래전, 이효리가 한 tv프로그램에서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전한 말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MC였던 강호동 아이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 어른이 되면?"

이경규가 대답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때 이효리가 대답한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고작 한마디였을 뿐이다. 그런데 TV를 보다가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왜 그랬을까.




# 아무나 되어도 괜찮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때까지 나는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해서였고, 임용고시에 떨어진 것 역시 공부를 덜 한 내가 문제였다. 우리 집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내가 돈을 벌어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꼼꼼하게 일처리를 못한 나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야무지고, 일 꼼꼼하게 잘하는 사람, 예의 바르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 부모님 생각하는 효녀, 살림도 깔끔하게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워킹맘'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열심히 사는 나에게 주는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응원이 버거웠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열렬한 응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아무나 되어도 괜찮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이다. TV속 그녀가 건넨 '아무나 돼.'라는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된 것이.

나는 조금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나이 탓인지, 세상에 닦인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30대의 나'보다 '40대의 내'가 더 좋다. 아마 '50대의 나'는 더 좋을지도.




# 말은 힘이 없다. 행동이 함께 할 때 그 말은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나와 연관성이 1도 없어 보이지만 이효리는 내가 유일하게 팔로잉하는 사람이다. 물론 팬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그녀의 정형화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이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팔로잉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요즘 학생들과 소통하려면 인스타그램이 필수'라는 아들에게 등 떠밀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엄마는 인스타 할 줄 모르는데..."

"엄마, 걱정 마세요. 내가 친구들한테 엄마 팔로우하라고 할게요. "

인스타그램을 로그인하자 낯 모르는 사람들이 마구 추천된다. 불편했다. 나라는 사람은 온라인상에서도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앱을 닫으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이 나타났다. 이효리.

연예인답지 않은 민낯에 눈을 맞으며 '눈이 많이 내려요. 여러분 춥지 마세요.'라는 식상한 멘트였는데 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을까.

출처 : 가수 이효리 인스타그램

다시 말하지만 난 이효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결이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은 순간순간 나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말은 힘이 없다. 행동이 함께 할 때 그 말은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말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말은 생명을 얻는다.

누구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인생 독고다이'라고 생각하라.

그녀가 졸업식장에서 후배들에게 전한 말은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놀이터만 나가면 너도나도 쉽게 친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미안해." 한마디로 용서받을 수 있었던 너그러운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에게 더 이상 너그러운 세상은 없다.

나를 위로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임을 잊지 말자. 진심을 다해서 "아무나 되어도 괜찮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비로소 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