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무렵 아들이 말했다. 그 무렵이면 '대통령, 과학자, 의사, 판사' 등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던 시기이니 그러려니 했다. 뽀로로에 흠뻑 빠져 같은 노래를 100번이 넘게 듣던 시기, 세상의 모든 공룡 이름을 달달 외우는 시기, 변신 로봇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 너의 꿈을 인정해. 하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공부할 때는 엉덩이를 의자에 10분도 채 못 붙이고 있는 아들이 낚시를 할 때는 해가 뜰 무렵부터 해가 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 집요함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게임을 하거나 운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 아들은 어항에 물을 갈아주고 물고기 밥을 주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뿐만이 아니다. 독서라곤 담을 쌓고 사는 녀석이 물고기 관련 서적은 꼼꼼하게 읽고 메모도 했다.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중학교 1학년되던 무렵이었다.
"엄마, OO수족관에 가고 싶은데 우리 집에서 멀어요?"
OO수족관은 우리 집에서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워낙 수족관을 좋아하는 아이라 주말에 함께 수족관에 방문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아는 척을 하셨다. "혹시, 섭섭님?" 엄밀히 따지자면 닉네임을 알고 계신 거였지만. 알고 보니 아들은 수족관 관련 카페에서 나름 열성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멤버였다. 글도 꽤 올리고 있었다. 인터넷 카페라고는 필요할 때 들어가서 가끔 글만 읽고 나오는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 14살 밖에 안된 아이가 30~40대 아저씨들과 함께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에 그 아이의 꿈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많은 직업들이 있으니 다른 것들도 돌아보기를 간절히 바랐다. 안정된 직업을 선택하길 바라는 것은 대다수 부모들의 바람이고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었다.
어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후로 10년이 흘렀다. 2주 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아들의 꿈은 '아쿠아리스트'다. 물고기를 잡는 일에서 물고기를 돌보는 일로 변한 것이긴 하지만 큰 카테고리 안에서 보면 변화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은 한창 어항 레이아웃 공부에 빠져있다. ( *어항 레이아웃 : 어항 속 정원을 설계하는 일)
자주 가는 아쿠아 카페에서 사장님이 어항 레이아웃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셨단다. 그 말을 하는 아들의 얼굴이 봄꽃보다 더 활짝 펴 보였다. 저렇게 좋을까? 아들을 따라서 나도 미소 지어 본다. 조금은 행복해진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출처 : Pixabay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행복한 삶' VS '사회적인 성공이 주는 안정적인 삶'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공교육에 몸담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자유학기니 진로교육이니 아무리 떠들어봤자 대학입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국영수를 잘하고 수행평가, 논술을 잘하는 아이만이 누구나 인정하는 대학 문을 통과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라는 관문이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어른들 모두 알고 있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실. '좋은 대학이 성공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국영수의 중요성과 자기주도학습의 필요성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할 의무를 갖고 있다. '나중에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공부가 발목을 잡지 않도록 지금 열심히 해 둬야 한다.'라는 아주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행복한 삶'과 '사회적인 성공이 주는 안정적인 삶'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운 좋은 아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사실 마흔이 넘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나를 포함해서)
# 손을 놓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들은 많이 (학습면에서) 쳐지는 아이다. 한때는 그 사실이 나를 굉장히 괴롭혔다. 공부를 못하는 내 아이가 마치 낙오자 인생을 살 것 같은 불안감이 문득문득 올라올 때면 맘카페를 뒤져가며 좋은 학원을 찾아보기도 했다. 만약 아들이 조금만 따라와 주었더라면 여전히 열심히 학원을 보냈을 것이다. 다행히도 다른 건 다 엄마 뜻대로 해주던 착한 아들은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따라오기를 거부했다. 엄마가 확실하게 포기할 수 있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아들을 포기하지 못했다. 저렇게 물고기를 좋아하다 보면 공부가 좋아질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마음 한쪽에 미약하게 살아있으니 말이다.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을 택할 것이다. 17년의 삶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조금은 덜 고단하기를, 그 삶이 행복하기를 묵묵히 응원하고 바라봐주는 것이 부모로서 나의 역할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아들을 향해 나가는 걱정 어린 손짓과 말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다스리는 것 또한 나의 몫.
예전에 아들이 두 발 자전거를 배울 때의 일이다. 연습을 하던 아이는 자전거가 엎어질까 봐 두려워서 자전거를 잡고 있는 아빠를 몇 번이고 되돌아보며 말했다.
"아빠, 절대 놓으면 안 돼!"
"그럼, 걱정 마. 아빠 절대 안 놔! 그러니까 앞에 봐야 해."
다짐과는 다르게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자전거를 놓았다. 그날 아들은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릎과 손바닥에 상처는 남았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 기특해서 아들에게 칭찬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자전거를 혼자 타는 것도 두렵지만 그 손을 놓아야 하는 부모도 두렵다는 것이다.
인생도 자전거 타기와 같다. 결국 자전거를 타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엎어지는 것이 두려워 부모가 계속 잡아주면 아이는 결국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 손을 놓아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이제 아들의 삶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다. 손을 놓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너무 걱정되고 조금 더 잡아주고 싶지만 손을 놓는 일 또한 용기가 필요한 것임을 알기에애써 용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