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병원을 한번 갈까 말까 하는 나에게 동생이 한 말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지금까지 사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 걱정도 팔자
3월 중순쯤, 목감기가 걸린 건지 목이 쉬었다. 방학 동안 휴식기에 들어갔던 목을 갑자기 혹사시키다 보니 무리가 가는 것은 교사의 숙명 같은 거다. 마치 새운동화를 신었을 때 뒤꿈치가 까지는 것처럼 여상스러운 일.
늘 그랬듯 이번에도 3월이면 치르는 '직업병 앓이'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1주, 2주... 3주. 시간이 흐를수록 목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 통증 역치가 낮은 내가 느끼기에도 일반 목감기와는 뭔가 달랐다.
불쑥 고개를 내민 불안에 기대어 인터넷에 증세를 검색했다. 성대결절로 시작한 상상의 나래는 이미 후두암까지 뻗어나가 있었다. 이걸 두고 옛 조상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걱정도 팔자, 사서 걱정한다.' 참으로 현명하신 조상님들이다.
# 원래 꾀꼬리 같은 목소리셨나요?
두려움에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병원에 갔다.
"원래 꾀꼬리 같은 목소리셨나요?" 의사 선생님이 질문했다.
뜬금없는 질문에도 나는 환자답게 성실한 대답을 할 의무가 있다.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듣기 나쁘지 않을 정도였어요."
"성대에 혹이 생겼어요. 한 달 이상되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사라지기를 기대하긴 어렵고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날짜 잡고 가세요."
학사일정을 꺼내 들고 수술하기 좋은 날을 꼽아본다. 내 아픔보다 학교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므로.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가장 빠른 수술날짜가 7월 말이었다. 학사일정을 들여다본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정말 많구나. 아무튼 그때쯤이면 방학이니 '맘 편히 수술을 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이후로도 몇 가지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술+담배 금지, 카페인 줄이기, 물 많이 마시기 등.
출처 : Pixabay
# 나는 혹과 동거를 시작했다
혹과 동거를 시작하고 내 생활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자의 반 타의 반으로 셀프 돌봄을 시작한 것이다.
첫째, 커피를 줄였다. 하루에 4잔 이상 마시던 커피를 2잔으로 줄였다. 커피 향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7월 말까지 혹이 몸집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둘째, 화를 줄였다. 화를 내다보면 자연스레 성대에 힘이 들어가고 멀쩡한 반대편 성대까지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홍삼을 먹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도록 영양제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최근 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아! 아침에 사과 먹는 일도 절대 빼놓지 않는다.
혹과 동거를 하면서 나는 나와 친해지는 중이다.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어쩌면 통증 역치가 낮았던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 나에게 관심이 적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다'라는 것을 자꾸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으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타인에 대한 생각, 나잇값, 역할에 대한 책임감' 등에 짓눌려 내면의 목소리를 잊고 지낸다. 하지만 진정한 '셈'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
앞으로 100일, 나는 혹과의 동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이 동거가 끝나는 날, 나와 좀 더 친해져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