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순간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 울리지 말아야 할 전화가 울리는 순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는 순간.
수업 6교시 종료종이 울리기 10분 전,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분명 광고전화일 테다. 가족들은 내 수업시간에 절대 전화를 하지 않는다. 무시하고 수업을 이어가려는데 에코백에 넣어둔 스마트폰 화면이 얼핏 보인다. 엄마였다.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무시하고 수업을 이어갔다.
잠시뒤 휴대전화 진동이 또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동생의 이름이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와는 다른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언니, 엄마랑 통화했어?"
"아니, 아직."
"외삼촌, 갑자기 쓰러져서 위독하대. 가망이 없나 봐..."
"... 어?... 일단 알겠어. 끊어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삼촌은 10남매인 엄마의 바로 아래 동생이었다. 딸 중에서도 중간에 끼어있던 엄마는 어린 시절 심통이 많았다. 첫째도 막내도 아닌 어설픈 위치에서 엄마가 관심받을 수 있을 것은 심통 부리는 정도였겠다 짐작할 뿐이다. 삼촌은 그런 엄마의 심통을 다 받아준 착한 동생이었다.
집안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삼촌은 아빠 대신이었다. 아빠는 건설업으로 장기간 지방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 집의 대소사는 삼촌이 그 역할을 해 주었다.
한 번은 엄청난 길치였던 엄마가 우리 둘을 데리고 아빠에게 다녀오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깜깜한 밤중에 모르는 길을 헤매던 우리는 이내 핑크색 불이 반짝이는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었다.(영등포 사창가였다.) 우여곡절 끝에 어스름한 불빛이 비치는 가로등 아래에 접어들었고 겨우 공중전화를 발견해서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은 그 한밤중에 우릴 어떻게 찾았는지 데리러 와 주었다.
갑작스레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도 그저 울고만 있는 우리 세 모녀를 대신해 삼촌이 장례의 모든 절차에 앞장서 주었다. 삼촌은 우리에게 어벤저스였고 슈퍼맨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멀리 살게 되면서 삼촌과 만나는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삼촌은 가끔 늦은 밤 전화를 걸어 내가 얼마나 예쁜 아이인지, 똑똑한 아이인지. 그리고... 얼마나 믿음직한 조카인지 말해 주었다. 그러면 나는 "삼촌, 내 걱정 말고 몸 관리 잘해." 하며 말하곤 했다. 평화로운 순간들...
모든 평화로운 순간은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날 때가 많다.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그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빛나는 순간이었는지, 소중한 순간이었는지 깨닫는다.
기억은 장면으로 남는다.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표정, 그날의 말.
상대가 말 안 해도 알 거라는 생각으로 말을 아끼지 말자. 그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가 표현한 말이다.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지금 말하자.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지금 나의 슈퍼맨에게 간다. 늦었지만 '내가 삼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마웠는지, 그리고... 그리울 건지' 말하기 위해서. 만약 이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이번에는 나의 슈퍼맨에게도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