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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May 25. 2024

고래의 춤이 슬퍼 보였다.

과연 고래는 누구를 위하여 춤추는 것일까?

#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퇴근 후 저녁식사가 끝나면 빨래를 하고 내일 아이 가방에 넣어 보낼 보리차를 끓인다. 다음은 아침에 먹을 과일 도시락을 만들고 청소기를 돌린다. 여기까지가 주부로서의 하루 일과다. 그다음은 작가와 블로거로서의 또 다른 일과가 시작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노트북 화면에 글로 엮어낸다. 시간은 어느덧 12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옆에서 보기 안쓰럽게."

집안일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남편이 묻는다.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남편도 아이들도 집안일은 잘하는 편이니 청소나 빨래도 오롯이 내 은 아니다. 보리차대신 생수를 마셔도 상관없고, 매일 아침 과일을 먹지 않아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도 단순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마감일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성실하게 해 내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기억이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루틴 있는 하루를 좋아했다.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하나 해치워가며 그것에 만족감을 다. 그것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누군가 칭찬하면 그 행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처럼 칭찬을 먹은 나의 자아는 40여 년 동안 거대하게 자라났다. (타인이 인정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촘촘하게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 가는 것. 그것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은 출간된 지 20년이 되었다. 우리 집 책장에 20년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범고래가 조련사와 레포를 형성하고 칭찬을 통해 멋진 쇼를 보여주는 것을 보며 작가 자신이 회사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다.


 문득 아이가 어렸을 때 돌고래 쇼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묘기를 부리는 고래가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쇼를 보지 않는다.





# 고래의 춤이 슬퍼 보였다.


 고래가 가장 잘하는 것은 수영이다. 포획되어 수조에 갇히고 칭찬과 훈육을 통해 조련받고 춤을 출수 있게 된 고래는 행복했을까? 넓은 바다를 잊지 못하고 사는 내내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야생의 바다에 비해 위험요소가 없고 춤만 추면 먹을 것과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였든 춤은 고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춤은 살아남기 위한 고래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래는 춤을 잘 추게 된 대가로 가장 잘하는 수영을 잊었다. 수영을 잊은 고래의 춤이 너무 슬퍼 보였다.



 칭찬을 먹고 자란 나의 자아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음을 인정한다. 열심히 춤을 추느라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다.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은 그만 멈추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찾아 나선다.


p.s. 요즘 이것저것 시도 중인데 쉽지 않다. 내가 하는 것이 보잘것없어 보여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만할까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12번씩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멈추지 말자. 누구나 한 걸음부터 시작했음을 잊지 말자.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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