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은 여느 때보다 이른 출근을 한다. 기초학력미달 학생들의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인원은 3명.
아이들이 싫어하는 담임은 무서운 선생님도 아니고, 무관심한 선생님도 아니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담임은 종례가 긴 선생님이다.
아침 9시부터 창살 같은 좁은 책상 위에 앉아있다가 합법적으로 풀려나는 시간, 3시 30분. 종례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방을 싸놓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10cm쯤 떼고 엉거주춤 앉아 달려 나갈 궁리를 하는 아이들이 종례가 긴 담임보다 더 싫어하는 선생님이 있다. 바로 방과 후에 남기는 선생님.(바로 나!)
그래서 우리 수업은 방과 후가 아니라 아침 8시에 시작된다. 가뜩이나 알아듣기 어려운 수업을 추가까지 해가며 들어야 하는 우리 '창의 톡'반 아이들에 대한 작은 배려다.
*창의 톡( talk) 반 : 기초학력반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부디 이 수업을 통해 창의력이 쑥쑥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매 수업 간식을 준비한다. 그 때문인지 출석률은 매우 높은 편. 물론 3명밖에 되지 않지만 나름 알찬 수업을 진행 중이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진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 오늘 가르쳐준 내용을 내일이면 절반도 기억 못 한다는 점 정도다. 분명 "다 알았어요. 선생님!"이라고 찰떡같이 말했는데... 역시 믿어서는 안 됐다는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수업을 끝내고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악의라고는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는 착한 아이들이지만 고등학교 수업은 어찌 따라갈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쓸데없는 걱정
6교시 수업이 종료되고 교무실에 와보니 졸업한 제자 A가 케이크를 들고 서있다. 스승의 날이라고 들고 온 모양이다. 고등학생 때도, 군인 시절에도, 그리고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자주 찾아오니 이젠 익숙하다. A는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다. 서른을 갓 넘긴나이에 (작지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니 기특하기만 하다.
" 선생님, 저 이번에 이쪽으로 가게 이전해요. 이전하면 놀러 오세요. 차 수리할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맡기세요."
"우리 OO이가 동기들 중에 제일 성공했네. 네가 잘돼서 마음이 너무 좋다. OO 이는 성실해서 뭘 해도 잘 될 줄 알았어. 앞으로 더 성공해서 더 큰 케이크 사와!"
A는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아니 많이 못하는 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영향력 있는 편이기보다는 약해서 소외되는 편이었다. 또 착하기는 엄청 착해서 학급의 궂은일은 다하고, 선생님들 짐도 잘 들어주는 심성 고운 아이였다. 그런 A가 안쓰럽고 마음이 쓰였다. 결국 A는 성적이 부족해서 집에서 먼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때 '우리 OO이 야무지지도 못하고 착하기만 한데 못된 아이들 만나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적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을 나왔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의 태도를 지녔는가라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