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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May 15. 2024

내가 선생질을 하는 이유(2)

우리는 원팀이다.

 저녁밥만 먹으면 방 안에 콕 박혀 친구들과 문자를 해대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오늘은 무슨 일인지 거실로 나왔다.

"엄마, 어때? 우리 반 반티야."

"음.... 세련되고 예쁜 거 잘 골랐네."

 그 말에 신이 났는지 두세 바퀴 돌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저 녀석, 아마도 체육대회 생각에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싶다. 




# 5월 행사의 꽃, 체육대회


 5월의 학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체육대회, 봄소풍, 수련회, 수학여행 등... 그중 최고는 단연 체육대회다. 다른 것들은 선생님이 차려놓은 밥상에 아이들이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일이지만 체육대회는 얘기가 다르다.

 대회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선수를 뽑고, 예선전을 치르고, 반티를 고르는 것 모두 들의 몫이다. 물론 아주 적극적인 담임선생님  필수조건이다.

 담임선생님의 주요 역할은 선수가 고르게 뽑힐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고, 수업 틈틈이 예선전 응원을 나가며, 부모님이 보시기에 상식적인 반티를 고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담임선생님은 체육대회계의 (애덤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


 우리 학교는 지난주에 체육대회를 했다. 전날까지 비를 뿌려대던 하늘은 아이들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맑다 못해 눈부시기까지 했다. 노란색, 핑크색, 파란색 형형색색의 반티를 입은 아이들은 마치 결전의 시간을 앞둔 전투사들 같았다. 귀여운 나의 전투사들.

모르겠다. 아무나 이겨랏! 



# 우린 원팀이다.


   줄다리기가 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장관이 펼쳐진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아이들 사이로 두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상대팀이 들을까 봐 눈치를 보며 전략회의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재밌다. 사실 선생님도 아무 전략이 없다. 주로 '가까이 붙어라, '영'에 당겨라, 덩치 좋은 OO이가 앞에 서서 기선을 제압해라'등의 잡다한 전략(?)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 반이 국가대표고 담임선생님은 뛰어난 전략가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목이 터져라 "영차"를 외친다. 아이들은 이에 화답하듯 젖 먹던 힘까지 짜낸다.(심지어 운동장에 드러눕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각했다고 연신 잔소리를 해대는 미운 담임도, 매일 친구랑 싸움박질해서 담임 애간장을 태우는 말썽꾸러기도 없다.  자주 잊지만 가끔 깨닫는다. 우린 원팀이다. 이게 내가 선생질을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아! 나 지금 혹과 동거 중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성대에 혹이 생겨 7월 수술을 앞두고 있다.) 수술도 하기 전에 목이 터질뻔했다. 지나가던 OO이가 다가와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사탕 한알. 입에 물자 달콤함이 입안 가득 번진다.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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