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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May 10. 2024

내가 선생질을 하는 이유(1)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마음 한편을 내어주는 일

 # 20년이 되어도 선생질은 두렵다


 어느 분야에서 20년을 일하면 대부분 전문가라고 불린다. 2003년 3월에 시작한 교직 생활은 올해 햇수로 20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막무가내 학부모는 두렵고, 말 안 듣는 학생은 부담스럽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 시스템이나 업무 프로그램, 수업 방식의 변화를 따라가기에도 급급하다. 사회적으로 쏟아지는 교사에 대한 불신, 서이초 사건 등 교직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문득문득 고개를 쳐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선생질을 하고 있다.


 가끔 선생질을 그만두는 상상을 하곤 한다. 더 늙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 좋은 계절에 해외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다. 여느 엄마들처럼 아들에게 따뜻한 아침밥도 챙겨주고, 동네 언니들과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생질을 하는 이유...


# 스승의 날... 제자들의 기억


  스승의 날이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찾아오는 제자들 중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던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자주 혼나고 잔소리를 들었던 제자나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제자들이 훨씬 많다. 이 사실에 대해 동료교사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물론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관적 결론이다.)

 모범생 아이들은 선생님들한테만 예쁨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가족들, 주변 지인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이다. 그러니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고 그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자주 혼나고 잔소리를 들었던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부모님의 돌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은 특별했을 것이고 그 아이의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 공평과 공정


 교직 생활을 하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공평과 공정'이다. 이것이 무너지는 순간, 아이들과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공평 :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음. 공정에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윤리적 측면보다는 물리적 측면에서 고르게 분배한다는 개념에 더 무게가 실린 말

공정 : 공평하고 올바름. 옳고 그름이라는 윤리적 개념에 무게가 더 실린 말

 공평은 눈에 보이는 것이니 지켜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공정이다. 똑같은 교실에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있으니 얼핏 보면 꽤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이 속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이 일을 가시 깨워줄 사람이 없어서 밥먹듯이 지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가정 폭력으로 몸을 다쳐서 학교를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아침마다 외제차를 타고 학교를 등교하거나 한 달 용돈이 50만 원이 넘는 아이들도 있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교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간극을 티끌만큼이라도 메우는 것은 교사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언제부턴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으로부터 방치가 아이들,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ADHD 등으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눈길을 많이 주기 시작했다.



# 내가 선생질을 계속하는 이유


 얼굴이 하얗고 통통한 볼살을 가진 A는 작년부터 눈길을 주고 있는 아이다.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지방으로 일을 가시면 고작 14세 밖에 안된 A는 집에 혼자 남겨진다.

 물론 내가 A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이름을 자주 불러주고 함께 청소를 하기도 하며 이것을 핑계로 간식을 주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A는 이번에 스스로 내 동아리(요리 동아리)에 들어왔다. A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에서 맛있는 것을 잔뜩 만들어 볼 계획이다.



 시간이 흘러 A가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으로 남기를 기도한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마음 한편을 내어주는 일. 그것이 내가 선생질을 계속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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